금융시장을 뒤흔든 '강원도의 힘'
입력 22.10.20 13:36
Invest Column
  • 강원도의 레고랜드. 이게 이 정도로 회자가 될 일인가 싶은데, 그 후폭풍은 시장 전체를 흔들고 있다.

    스토리라인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는 춘천시에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위해 지난 2012년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라는 부동산 개발·시행·분양 회사를 설립했다. 최문순 전임 도지사 때 일이다. GJC가 레고랜드 프로젝트의 개발 주체고, 강원도는 GJC의 지분 44%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부도 처리가 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것이다. GJC가 대주로서 아이원제일차에서 2050억원의 자금을 차입하는 구조다. 만약 GJC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강원도가 대출 만기일에 대출금 상환에 필요한 지급금을 아이원제일차에 지급해야 하는 지급 보증이 들어가 있다.

    사건은 대출채권 의무조기상환일인 8월29일까지 대출약정상 원금이 상환되지 않은 데서 시작한다. 만기는 9월30일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강원도는 지급금을 내놓는 대신 GJC에 대해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응? 이게 가능한가?

    시장(市場)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지급보증을 하기로 했는데 지급하지 않는다고?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액션을 취했다. 만기일인 9월29일까지 A1이었던 ABCP의 신용등급은 30일에 C로, 10월4일엔 채무불이행, 디폴트를 의미하는 D로 강등됐다. 말 그대로 부도가 난 거다.

    신평사들이 이 ABCP에 A1 등급을 부여한 것은 지급금 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강원도의 신용도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나서서 하는 사업이니 ‘설마 부도가 나겠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하게 해줬는데 그 설마가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강원도의 논리는 이랬다. 레고랜드뿐만 아니라 미시령터널, 알펜시아리조트 등 전임 도지사가 벌여놓은 사업들이 너무 많아 강원도의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진태 도지사는 당선되자 이들 사업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서 시장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로 밀어붙인 게 화근이 됐다. 아무리 전임 도지사의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해도 '계약은 계약'이다. 강원도의 약속을 믿고 투자한 채권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지방채라도 발행해서 갚으라고 항의했고 결국 강원도는 꼬리를 내렸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차례 대응방안을 논의했고 그 결과 예산을 편성해 ABCP에 대해 전액 상환하기로 했다.

    강원도의 실정은 도 단위에서 끝나지 않고 전국구로 영향을 미쳤다.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혁혁한 공로가 있겠다. 

    “지방정부도 돈을 안갚겠다는데, 시공사는 어떻게 믿겠나”

    이번 사태로 금융권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사고 전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 크레딧 리스크는 바로 빠르게 전이됐다. 가뜩이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글로벌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 투자 조달 비용이 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비 부담도 한층 커져 개발 수익성이 악화되는 중이었다. 주택 분양시장에선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고 거래량도 감소하며 전반적인 투자심리가 얼어붙는 중이었다. 지방정부발(發) ABCP 부도는 PF 대출 시장의 연쇄적인 중단 가능성, 더 나아가 금융시장의 위축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단기금융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브릿지론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증권사, 캐피탈, 자산운용,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위기론이 불거졌다. 시장에선 특정 건설사의 부도, 증권사의 매물 출회 등 ‘찌라시’가 난무하고 있다. 강원도가 굴린 스노우볼은 강력했다.

    금융당국도 부랴부랴 대응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20일 '시장안정을 위한 금융위원장 특별 지시사항'을 통해 "강원도 PF-ABCP 관련 이슈 이후 확산되는 시장 불안요인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며 관련 대책을 쏟아냈다.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여유재원 1조6000억원을 통해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단기채권들을 매입재개하고, 캐피탈콜(투자자금 일부를 선제집행한 후 잔여액수를 수요에 따라 집행하는 방식)도 즉각 준비한다.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유동성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며, 은행권에서 요구한 LCR 규제비율 정상화 조치유예와 각종 유동성 규제 일부 완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강원도는 사태 심각성을 여전히 인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9일에 있었던 강원도의회 도정질의에서 주관사인 BNK투자증권 측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를 보였다.(참고로 강원도의회는 국민의힘이 다수다) 

    강원도는 BNK투자증권 측에 “내년 1월까지 선취이자를 납부한 사실을 알면서도 강원도가 회생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회생신청을 하겠다는 발표만으로 강원도하고 일체의 협의없이 기한이익상실로 판단해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한 BNK투자증권 측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주관사 변경 이유를 두고 이자율 변경과 더불어 김지완 BNK금융 회장을 언급하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김 회장의 비리 의혹으로 주관사가 도의 이미지 손실에 동조하지 않았나라는 얘기도 나왔다. 시장의 논리를 정치 이슈로 치환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방식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게다가 정권 교체의 타이밍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장은 연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에 불안함을 가진다. 그 불안함은 뜨거운 주식시장보단 차가운 채권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파급력은 지자체장이 생각하는 수준의 한참 이상이다. 강원도가 한 번 써본 힘은 시장에 원죄로 남게 됐다. 시장에선 벌써부터 2022년 자본시장의 신스틸러로 김진태 도지사를 낙점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