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이 GS그룹 신성장 동력?
입력 22.10.21 07:00
실적 부진에 배터리 소재 사업 철수한 GS…리사이클링으로 재도전
일진머티리얼즈 실사도 안나섰는데…"정말 관심 있을까?" 의문
국내 배터리 3사, 이미 리사이클링 시장 뛰어들어 경쟁 심화
GS, 완성차 기업과 연결고리 없어 폐배터리 확보도 문제
  • GS그룹이 폐배터리 재활용(리사이클링) 사업을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시늉’에 그친다며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달 초 GS에너지는 포스코홀딩스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 합작법인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포스코홀딩스와 GS에너지가 총 1700여억원을 투자해 각각 51%, 49%의 지분을 갖는다.

    GS그룹은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3년 GS에너지는 양극재 생산 기업 대정이엠 지분을 3년에 걸쳐 인수한 후 사명을 GS이엠으로 바꿨다. 출범 이후 3년간 적자를 이어가는 등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2016년 하반기 LG화학에 양극재 생산 공장과 인력을 모두 넘기고 2018년 법인을 해산했다.

    아픈 과거가 있음에도 GS그룹이 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 뛰어드는 건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5~10년이다. 2020년부터 전기차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었으니, 이르면 2025년부터 리사이클링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가 2022년 974만대에서 2025년 2174만대로 약 2.2배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전기차 배터리 팩 시장 규모도 705억달러에서 1590억달러로 약 2.1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GS그룹이 전기차·배터리 공급망(밸류체인)의 끝부분에 참전하는 건, 아직 폐배터리 시장은 마지막으로 남은 '미개척 시장'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아직 절대적 강자가 없어 글로벌 업체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한 증권사 정유화학 부문 연구원은 "배터리 밸류체인의 앞 단계는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대기업이 선점해 후발주자가 들어가기 쉽지 않다"며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포스코와 만든 컨소시엄을 GS가 일방 파기한 전적이 있지만, 미래 성장을 위해 다시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GS그룹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을 신사업으로 내세우는 데 의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이 보이지 않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지난 5월 매물로 나온 2차전지용 동박 제조 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전에 GS그룹은 실사에 나서지 않았다. 효성그룹이 스톤브릿지캐피탈과 함께 인수를 검토했고, 삼성그룹과 SK그룹도 인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을 따져본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GS그룹이 정말로 배터리 사업에 관심이 있었다면 일진머티리얼즈 실사에 나설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보니 구체적인 전략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며 "결국 GS그룹이 사업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시늉에 그친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은 아직 크지 않은데 '쟁쟁'한 경쟁자가 많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은 이미 리사이클링 시장에 뛰어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를 재활용해 각종 소재를 추출하는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SK온과 함께 2025년까지 30GWh 규모의 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3000억원의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북미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Li-Cycle)'의 지분 2.6%를 인수했다. 삼성도 그룹 차원에서 국내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자원회수업체 성일하이텍 지분을 17.83% 확보하고 있다.

    아울러 GS그룹은 완성차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 않아 폐배터리 확보처가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LG와 SK 등 리사이클링에 먼저 뛰어든 기업들은 완성차 회사와 실증사업도 진행중이다. 폐배터리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확보 주도권은 완성차 회사에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이들이 배터리 기업과 설립한 배터리 합작사에 물량이 몰릴 거란 분석이다. 

    현대글로비스와 LG화학은 지난 2020년 10월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실증특례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승인 받았다. 현대글로비스는 자체 보유한 배터리를 '마카롱택시' 운영사인 KST모빌리티 등에 빌려주고, LG화학은 2~3년 뒤 다 쓴 배터리를 전기차 급속 충전용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활용하는 선순환 사업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됐다.

    기아와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3월 전기차 배터리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1년간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실증사업을 진행했다. 

    현대자동차는 자체적으로 폐배터리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해 시장 선점에 나섰다. 글로벌 물류망을 갖춘 현대글로비스 전세계 폐차장·딜러점에서 나오는 폐배터리를 회수하고, 전세계 부품 공급망을 지닌 현대모비스가 재제조하는 등 계획을 세웠다. 

    다른 증권사 정유화학 부문 연구원은 "국내 시장은 이미 경쟁자가 많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GS그룹과 포스코그룹은 배터리 기업이나 완성차 기업과 연결고리가 없다"며 "파트너십을 확보하더라도 폐배터리 회수·수집·운송 비용을 따지면 공급망을 갖춘 타사와 달리 경제성이 나오기도 힘들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