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신뢰 무너뜨린 정치인의 헛발질…영국은 총리 사임, 강원도는?
입력 22.10.21 16:31
Invest Column
  •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4일만에 사임을 발표했다.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가 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이 유일한 ‘업적’이 됐다.

    트러스 총리 사임의 직접적인 이유는 국가 경제를 흔들었다는 데 있다. 지난 9월23일 450억파운드(약 72조원) 규모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을 사전 교감이나 재정 전망 없이 던지자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역대 최저로 추락했고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결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이 긴급 개입을 해야했다.

    부자 감세, 법인세율 동결 등을 차례로 뒤집고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내치면서까지 반전을 꾀했지만 새로 온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이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며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다.

    우연처럼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월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레고랜드 프로젝트를 위해 설립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발표했다.(금융시장을 뒤흔든 '강원도의 힘' 참고)

    김 지사는 “레고랜드는 외국기업이 모든 수익을 가져가는 불공평한 계약구조임에도 그동안 강원도는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법정관리인이나 새로운 인수자가 제 값을 받고 매각하면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며 “강원도가 안고 있는 2050억원의 보증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번 회생 신청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GJC가 기업회생에 들어가면 “기존에 매매계약이 이뤄진 땅에 대해 원금만 돌려주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땅을 더 비싼 값에 다시 팔면, 빚을 갚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강원도의 계산이었다.

    역시나 투자자들과 사전 교감 없이 던진 이 한 마디는 금융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방정부가 지급보증이라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 당장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부도 처리됐고, 이는 한국 금융시장의 ‘돈맥경화’를 불러왔다.

    도와 도의회의 합작품은 ‘부동산PF 시장 경색→기업어음(CP) 등 단기금융시장 경색→건설사 및 증권사 부도설→전체 회사채 시장 경색→금융당국 채안펀드 투입→기업 부도확률 증가→한국은행에 SOS’로 일파만파 커졌다.

    사태가 이러니 경제지뿐만 아니라 일간지, 지상파 뉴스 등 모든 매체가 주요 뉴스로 다룰 정도였다. 김진태 지사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 지사는 요며칠 말 그대로 자본시장의 ‘스타’가 됐다. 채권시장에선 "영국에 트러스가 있다면 한국엔 김진태가 있다"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정치인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한 주였다. 그 영향력은 역시나 본의 아니게 시장 너머 국가 전체에 당분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잠잠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커지자 김진태 지사는 21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김 지사는 “강원도는 누차 말씀드렸던 것처럼 중도개발공사 변제불능으로 인한 보증채무를 반드시 이행할 것이다. 늦어도 2023년 1월 29일까지 이행하겠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올해 안에 보증채무 이행을 위한 지급금 2050억원의 예산안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채권시장의 개별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김 지사는 강원도의 문제를 해결하면 금융시장 전체가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착각한 듯 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고 배는 이미 한 달 전에 떠났다.

    내각제의 영국에선 정책 실패로 국가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총리가 신임을 받지 못해 물러나게 됐다. 직선제로 뽑힌 민선 도지사는 도 경제를 개선시켜보겠다는 ‘액션’으로 금융시장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김 지사는 이 책임을 어떻게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