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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는 유동성 위기. 표면적으로는 한국전력공사의 한전채 무더기 발행, 강원도발(發)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는 부동산 금융시장의 대출 만기가 전반적으로 너무 짧아진 데 원인이 있다. 이는 유동성 위기가 발발하면 차환 리스크가 커짐을 의미하는데, 바로 그게 현실화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역사적 초저금리 시대에 돈이 될만한 사업은 '부동산 개발' 정도였다. 앞서 저축은행이 사라진 자리는 증권사들이 차지하게 됐고 증권시장은 말 그대로 '유동화'됐다.
PF론 유동화증권은 상환의 적시성, 상환재원의 충분성이 보장돼야 한다. 이에 신용도가 우수한 보강 주체가 필수적이다. 증권사 등 금융사나 시공사로 참여하는 건설사가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레고랜드처럼 지방정부가 참여하기도 하고 이번에 문제가 된 것 역시 지급보증 여부였다.
또 중요한 건 대출 만기다. 통상적으로 개발사업이 2~3년 진행되는 걸 감안하면 그에 맞춰 현금흐름이 분할 상환에 들어가게 된다. 아니면 브릿지론을 통해 짧게 조달하고 이후 사업종료 때까지 여러 번 리파이낸싱을 하기도 한다. 시장 상황만 괜찮다면 사업주체나 투자자 모두 만기가 짧은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선호하게 된다. 현 부동산금융 시장은 PF-ABCP나 PF-ABSTB, 브릿지론 같은 단기 금융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돈이 돌 때는 대출 만기가 갈수록 짧아지면 상환 리스크도 줄어든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유동성 공여 약정까지 체결했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매번 위기를 경험하지만 쉽게 달콤한 수익을 맛보면 누구도 달리는 기차를 멈추게 할 생각은 가지지 못한다.
ABCP를 찍을수록 증권업계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곳간이 풍성해진 중소형 증권사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고 덕분에 증권업계의 작년 평균 임금 상승률은 20%를 넘어섰다. PF부서에선 성과급으로만 수억원을 받는 사례로 나왔다. 그리곤 반기도 안돼 증권업계는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예상 못한 변수는 매번, 또 커다란 위기는 한 순간에 찾아오고 그 누구도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부동산금융 시장은 실타래처럼 엮여 있어 문제가 터지면 개별 사업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사업장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 ABCP 차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돼 일시적인 자금조달 수요를 폭증하게 만든다. ABCP 차환 발행 금리가 10%를 넘어섰다는 게 놀랄 얘기도 아니다. 이게 연쇄적으로 금융사, 기업 전반의 차환 리스크 증가로 이어진다.
부동산 호황 속에 PF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던 증권사들은 커다란 부실 뇌관을 안게 됐다. 업계 전체가 위기를 자초한 셈을 넘어 유동성 위기의 실타래를 엮기 시작한 주역이 됐다. 진화를 위해 정부가 뒤늦게 ‘50조+α’ 안정책을 꺼냈지만 뒤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한전이나 김진태 강원도지사 덕분에(?) 이들의 ‘모럴헤저드’ 논란이 묻힐 공산은 조금은 커졌다.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0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