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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50조원+α’ 지원안을 내놓은 데 이어 한국은행과 금융당국도 후속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를 촉발한 강원도는 보증채무 전액을 갚기로 했고, 대형 뇌관인 둔촌주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채안펀드의 도움으로 만기 하루 전 차환 발행에 성공했다.
연쇄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채권시장의 불안감은 단기간에 지워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발 늦게 쏟아낸 조치들이 그만큼 위험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고, 시장 구성원들의 신뢰도 옅어진 상황이다. 당장의 자금을 조달하고, 위험 자산을 떠넘기기 위한 눈치싸움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떠오른 한국전력(신용등급 AAA)은 ‘50조원 지원안’ 발표 후에도 채권 발행을 이어갔다. 25일 2000억원 규모로 각각 발행하려던 3년 만기 채권은 수요자를 찾지 못했고, 2년물은 6% 코앞의 금리(5.99%)를 제시한 끝에 800억원 규모만 발행했다. 이튿날에도 2년물 2000억원(금리 5.9%)을 발행하려 했지만 600억원 발행에 그쳤다.
이번주 다른 공사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한국가스공사(AAA)는 2년물과 5년물 채권을 발행하려 했으나 2년물은 유찰됐고 5년물은 개별 민평금리 대비 43bp(0.43%포인트)를 가산해주고 발행에 성공했다. 인천도시공사는 3년만기 녹색채권 발행을 포기했고, 2년물은 개별 민평금리 대비 120bp 높은 금리를 주고 발행했다. 한국장학재단 5년물은 정부 보증 덕에 초과 수요가 몰렸다.
과천도시공사는 지난 14일 1년물과 1년6개월물을 5% 중반대 금리로 발행했지만, 불과 며칠 뒤인 20일에는 1년물을 6.3% 금리로 발행했다. 그보다 낮은 금리를 바랐지만 투자 수요가 원활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렸다. 28일을 발행일로 잡은 500억원 규모 1년물 채권의 금리는 6.6%까지 제시됐다. 개별 민평금리보다 130bp 가까이 높다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자금 조달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조건을 바꿔가면서라도 채권시장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전력의 경우 ‘구축효과’가 이어지자 정부가 채권 발행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예전 같으면 자금 수요가 생길 때까지 한숨 쉬어갔겠지만 지금은 자금 조달을 멈추면 전력거래대금 지급 등 유동성 문제가 닥칠 수 있다.
어수선한 채권시장의 분위기도 이어지고 있다. 어제 투자 의향을 물어온 기업인데, 숫자만 살짝 달라진 투자 제안서가 다음날 또 날아다니는 경우가 늘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게 맞느냐’는 푸념이 나온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관투자가들은 기존 채권, 특히 부동산이나 건설 관련 자산을 정리하는 데 급급하다. 투자 수요가 언제 확인될지 알기 어려우니 하루가 머다 하고 채권시장을 드나들 수밖에 없다.
한 채권투자 업계 관계자는 “언제 채권을 사려는 수요가 생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가 머다하고 비슷한 투자 제안이 오가니 보고 있기 지겹다”며 “거래 관계자들은 품격을 잊은지 오래고 자기 목적을 채우기 위해 게릴라성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에서도 자금을 구해야 하는 쪽, 즉 발행사나 크레딧 채권 매도자들의 심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 급한 불이 꺼졌을 뿐 불안 요소는 여전히 많기 때문에 하루라도 먼저 더 많은 자금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여의도에선 채권 발행에 실패한 금융사 자금담당 임원이 쓰러졌다는 흉흉한 소문도 심심찮게 돌고 있다.
최근 거래에 나온 서울 중심가 업무시설부지 담보대출 기반의 전자단기사채(신용등급 A1) 금리는 9% 이상이었다. 규모가 100억원대에 불과하고 AA-급 증권사의 매입확약 조건까지 붙어 있었지만 가격 하락을 피하기 어려웠다. 한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금리는 7.5%로 제시됐다. 이 역시 서울 노른자위 지역 재개발 사업이자, 신용등급 AA-급 대형 건설사의 연대보증이 있었다.
서울 외 수도권 지역은 투심이 더 냉랭하다. 한 도시공원 사업 관련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는 금리 7.5%가 제시됐다. 만기 ‘이틀’에 대형 증권사의 인수확약까지 붙은 자산이었지만 투자자 모집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거래가 완료될 때까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IB사업부 관계자는 "IB들도 채권브로커에게 한 달 만기 등의 초단기 채권만 부탁하는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매일 루틴하게 팔렸던 하루 만기 채권도 최근에는 4시가 넘어서야 겨우 팔린다"고 말했다.
‘50조원+α’에 후속대책 쏟아지며 위기는 넘겼지만
시장 신뢰 회복은 요원…위험 이전 '눈치싸움'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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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0월 3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