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동성 공급안 내고 '채권 사라'기관 팔 비틀어도…"금리인상 끝날 때까지 채권은 좀…"
입력 22.11.17 07:00
Investor
  • 정부가 '50조원+알파' 대규모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은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채권 시장은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신규 발행물은 여전히 수요를 확보하기 어렵고 금리는 꾸준히 오름세를 보인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동시에 연기금·공제회 등에 적극 매수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돈이 돌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이달 초부터 정부 측 요청으로 채권 매수에 나설 준비를 했다. 기관 투자부서에서 각 증권사 연구원 등에 연락을 취해 각 산업군 별로 회사채 매입에 대한 의견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국고채를 시작으로 아랫단 스프레드(가산금리)가 안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금리인상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수요를 찾아보기 어려울 거란 목소리만 돌아오고 있다. 

    "매수 주체 찾기 어렵다"…정부 안정대책 약발도 제한적

    "금리가 계속 올라갈 예정인데 누가 적극적으로 매수할 수 있을까 싶다. 현재와 같은 금리 인상 속도에선 기존에 보유하던 채권을 팔면 손실이 확정되고, 새로 발행되는 채권을 사려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춘다고 해도 아직은 위가 열려 있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불확실성이 높아서 1년물 이상엔 손이 가기 어렵다" (증권사 DCM 담당 임원)   

    "대형 기관투자자가 신중한 상황에서 다른 매수 주체도 채권 시장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증권사는 물론이고 공제회마저 북(book)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얘기가 많다. 국민연금이나 우정사업본부 등이 채권 매입에 적극 나서줘야 경색을 해소할 수 있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들마저 서로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증권사 채권 담당 연구원)

    "회사채 수요예측이 다 미뤄지고 있다. SK그룹이 비교적 용감하게 나서지만 연기금 등 대형 기관을 제외하면 수급을 받쳐줄 수 있는 주체를 꼽기 어렵다. 채권 비중이 높은 운용사들은 더더욱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정부 요청대로 큰손들이 매수에 나서준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도 한계가 있다" (운용사 채권 운용역)

    "안 그래도 돈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정부가 안정대책을 내놔봤자 한국전력 같은 최고신용 등급(AAA) 채권이 수급 한편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교적 미매각 가능성이 낮은 발행사도 단기물 시장으로 몰려가면서 정부가 공급한 유동성이 아랫단까지 온전히 전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증권사 DCM부서 관계자)

    지금 금리 환경에선 3년물도 길다

    "얼마 전 LG유플러스가 사실상 수요예측에 실패하고 미매각 날 것을 각오하고 3년물을 낮은 금리로 주관사단에 떠넘겼는데, 시장 입장에선 민폐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발행사가 주관사단에 소위 '갑질'한 거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통신사가 미매각 나는 사례가 이례적인데 만기 구조를 짧게 했으면 소화될 수 있는 물량을 무리하게 진행시키면서 평판에 문제가 생긴 것" (증권사 커버리지부서 관계자)

    "당장 내년 금리를 두고도 이견이 분분한데, 3년물을 넘어가면 그 불확실성을 투자자들이 감수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계적으로 전과 비슷한 트렌치로 차환 발행을 이어가기보다는 시장 경색이 해소될 때까지 만기 구조를 짧게 가져가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못해도 내년 하반기면 금리 인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많은 만큼 잠시 단기물 중심으로 버틸 필요도 있다" (증권사 DCM부서 관계자) 

    "AA 등급 이상 정유사·통신사 등은 수요가 있어도 3년물이 부담스럽긴 하다. 그러나 여전채 시장으로 가면 2년을 넘어가는 순간 엄청 부담스러워진다. 캐피탈채 3년물은 아무도 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시장 심리를 나타내는 가늠자가 캐피탈채인데, 여전채는 우량 회사채보다도 더 꺼려 하는 심리가 아직 전해진다" (운용사 채권 운용역)

    연말 '반짝' 안도 분위기에도…'블랙스완' 계속될까 걱정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꼭지가 보인다는 안도감이 전해지지만 내년에도 금리는 올라갈 것이라 본다. 가장 큰 걱정은 레고랜드 사태나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같은 블랙스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이 적극 대응하고 있다지만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진짜 큰 사고가 터질 수 있다" (시중은행 투자금융 담당 임원)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올해 급속도로 치솟은 금리가 정점을 찍고 과거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금리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거란 안도만으로도 채권 시장에서 다시 돈이 돌 수 있지만, 발행사 입장에선 늘어난 조달 비용에 대한 부담은 계속 고민거리로 남는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과정은 원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내년에 시장에서 퇴출 되는 금융사 한둘은 나올 것으로 다들 보고 있다" (대형은행 대기업 담당 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