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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그룹 인사 시즌이 다가왔다. CEO 등 주요 경영진들의 평가 척도는 다양하다. 지난 몇 년간 초저금리 시대에선 신사업, 투자, 주가가 키워드였다. 누가 얼마나 더 새로운 것에 투자를 많이 하고 그로 인해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리느냐가 경영진 주요 평가 요소였다.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0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고금리 시대를 맞이하며 ‘안정’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올 한해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하긴커녕 적자를 내기도 한다. 더 이상 주가를 부양시킬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공격력보다 탄탄한 수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롯데그룹 사례만 보더라도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신용등급 방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시장에선 롯데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사업성과보다 재무성과를 우선시한다. 무리한 사업은 절대 하지 않는다. 넉넉한 현금을 갖고 있다. 높은 신용도를 갖고 있다. 비상시 일본의 크레딧 라인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즉 유동성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전망이 모두 ‘부정적’으로 조정되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가까이로는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롯데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그룹 전체가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몇 년 전으로 가면 신사업 투자를 위해 그룹 전체가 유동성을 소진한 부메랑이 돌아왔다. 예전에 알던 롯데가 아니다.
일단은 자금난에 빠진 책임을 지고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다. 최근 한 달간 계열사와 금융권으로부터 수혈 또는 차입하기로 한 자금만 1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롯데건설 지원 때문만은 아니여도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다른 계열사 대표들도 위기감을 가질 법하다.
이런 문제는 비단 롯데만이 갖고 있지 않다. 여타 그룹들도 최근 몇 년간 CEO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투자를 강조했고, 이를 경영 성과 지표로 제시했다. 오너가 이를 종용하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미국에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하거나 이행했는데, 내년에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와서 소비가 침체되면 또 다른 악몽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힘든 시기가 올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항변을 하겠지만, 과거 같은 호시절이 지속될 거라 믿고 위기를 대비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한전채, 레고렌드, 흥국생명 등 일련의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시장은 다시 미래의 '청사진'보단 현재의 '신용'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괜찮은 간판을 갖고 있더라도 신용을 잃게 되면 그 기업에 흘러갈 유동성은 점차 메마를 가능성이 크다. 한 번 꼬이면 풀기엔 너무 어려운 매듭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지금은 등급 방어가 더 중요하다. 이 점이 인사에도 적용될 시절이다.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1월 22일 10:3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