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펼친 SK그룹의 ‘구독경제’ 청사진
입력 22.11.30 07:00
구독경제 활성화에 앞서 렌탈·보안 등 주목
SK매직 실적 둔화, SK쉴더스는 시너지 모호
매각 움직임도…11번가·웨이브 아쉬운 성과
  •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는 미국 솔루션 기업 주오라(Zuora)의 창업자 티엔 추오(Tien Tzuo)가 고안한 개념이다. 정기적으로 일정 요금을 내고 서비스를 공급받는 방식을 통칭하며 이후 가전, 생활용품, 헬스케어, 자동차 기능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M&A에서는 2019년 넷마블이 코웨이 인수를 단행할 때 '구독경제 강화'를 목표로 선언, 하나의 '테마'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에 앞서 SK네트웍스가 2016년 인수한 SK매직도 구독경제와 닿아 있다. 회사는 2020년 직영주유소 사업을 매각한 후 SK매직과 SK렌터카에 집중하며 종합렌탈회사로 성장했다. SK매직이 집중한 직수형(Tankless) 정수기 시장이 커지며 실적이 개선됐고 처음 세운 ‘2020년 매출 1조원’ 목표도 달성했다. 사업 특성상 초기 기기 구매 부담은 있지만 계정을 늘릴수록 안정적인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SK매직의 실적 개선세는 둔화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매출 증대 효과는 있었지만 영업이익은 줄기 시작했다. 2020년 831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작년 738억원, 올해 3분기까지 387억원으로 하향세다. 일회성 비용도 있었지만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불황으로 정수기 등 필수재가 아닌 소형 가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처음부터 비싸게 샀다는 시선도 일부 있었다.

    이 와중에 최근 SK매직 매각 가능성이 거론됐다. 회사는 매각을 부인하지만 시장에선 매각 자문사와 잠재 매수자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SK텔레콤 매장을 렌탈사업 창구로 활용하는 등 협업도 했으나 눈에 띄는 시너지 효과는 없었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렌털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도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기업 M&A 담당자는 “렌탈산업의 정점이 지났기 때문에 SK네트웍스도 신사업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현대렌탈케어 매각을 추진 중이다.

    SK스퀘어가 2018년 인수한 SK쉴더스(전 ADT캡스)도 매달 이용료를 받는 구독경제 시스템과 유사하다. 올해는 가족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족케어’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지난 코웨이 인수전에는 SK텔레콤(SK스퀘어 분할 전)도 잠재 후보로 꼽혔었다. 특히 SK텔레콤은 ADT캡스를 인수한 직후였던 터라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평가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고객의 정수기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위급한 상황이 감지되면 보안업체가 나설 수 있다는 식이다.

    SK스퀘어는 최근 사모펀드(PEF) 운용사 EQT파트너스에 SK쉴더스를 매각하고 있다. 아직 협상 중이지만 EQT파트너스가 기존 재무적투자자(FI) 지분 및 신주를 인수하면 지분 50% 이상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공동 경영’을 강조하지만 단독으로 사업을 키우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SK쉴더스 인수로 기대했던 통신과 보안의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구독경제 시각으로 투자했던 보안 사업과 정수기 사업에서 성과도 부진하고 흥미를 잃어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작년 ‘아마존 상품 무료배송’을 앞세운 신규 구독 브랜드 ‘T우주’를 발표했다. 전 국민이 이용 가능한 구독 플랫폼을 추구한다고 했다. 올해는 11번가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에 특화된 ‘우주패스 slim’의 연간 멤버십을 출시했다. ‘슈팅배송’으로 쿠팡식 직매입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적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지 않는 모습이다. 고객에겐 좋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며 매출은 늘어나지만, 비용이 많이 나가는 사업 구조상 적자 폭을 줄이는 데 애를 먹고 있다. 2018년 FI를 유치하며 5년내 상장을 약속했으나, 최근 예상 몸값은 투자자의 기대에 턱없이 모자라다. 사정이 이러니 회사의 부인에도 불구, 11번가 지분을 활용해 투자 상환 자금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식 영업방식은 과거엔 실패할 것이라 봐서 따라하지 못했고 이제는 따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쿠팡이 3분기 흑자를 내면서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은 사실상 끝이 났고 경쟁 기업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란 기대도 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웨이브(Wavve)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것이란 기대는 충족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구독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OTT 산업은 국내외 할 것 없이 성장이 둔화하고 구독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웨이브는 일본 통신사와 손잡고 일본 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왓챠 인수 가능성도 거론됐었다. 분주한 행보에도 늘어나는 콘텐츠 투자 비용을 감당한만큼 안정적인 구독자 수를 확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