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하는 정권, '전리품' 된 금융지주 CEO
입력 22.12.13 07:00
취재노트
NH농협금융, '이변없이' 청와대 출신 인사 회장 추천
신한금융 현 회장 후보 사퇴 두고서도 외압설 확산
CEO 교체 시기 금융지주 대부분 관치 논란과 엮여
관치 끝은 언제나 주주 손실..."CEO 리스크 고려해야"
  • "이러려고 검사 출신 금융감독원장이 그 부산을 떤 것이겠죠. 다시 모피아(MOFIA;재정부 출신 관료)의 시대가 시작되면, 국내 상장 금융지주나 금융회사들은 더 큰 디스카운트(할인)를 각오해야 할 겁니다." (한 금융회사 고위 임원)

    현 정권 출범에 기여한 이석준 전 청와대 국무조정실장이 차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낙점됐다. 벌써부터 금융권 일각에서는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룹 내부에서 신망이 두텁던 농협 내부 출신 회장을 2년 단임을 끝으로 쳐내고, 정치권과 연줄이 있는 인사가 자리에 앉게 된 까닭이다.

    처음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 인사들이 농협금융 주변에서 언급될 때까지만 해도 '설마' 하는 기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3년 단임으로 규정된 중앙회장 임기를 연임 가능토록 개정 추진할 거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판이 바뀌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공물'로 바쳐질 거란 이야기가 득세했고, 결국 소문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묘한 용퇴를 두고서도 외압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의 용퇴는 후임 회장에게 6년의 임기를 열어주는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외는 별개로, 면접장에 들어서며 연임 포부를 밝혔던 후보가 30분의 프리젠테이션(PT)까지 성실히 수행한 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뒷말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 회장은 사퇴의 변을 밝히는 자리에서 '라임 펀드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대한 우회적인 압박의 수단으로 조 회장에게 먼저 외압이 들어간 게 아니겠느냐는 소문도 없지 않다. 손 회장은 지난달 라임펀드 판매 건으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가처분 신청 등 법률적 구제책이 없다면, 내년 3월 이후 임기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손 회장의 연임 여부는 금융권 초미의 관심사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전례 없이 5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불러모아 최고경영자(CEO)  선임과 관련한 사안을 당부했다는 사실 자체가 손 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손 회장은 중징계 통보 이후 아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BNK금융지주도, IBK기업은행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 BNK금융은 김지완 회장의 사퇴 이후 ▲ 내부 승계 원칙을 고쳐 회장 후보로 외부인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 취임할 회장의 나이 제한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외부 인사 내정설이 돌고 있다. IBK기업은행 역시 이전 정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이었던 현 윤종원 행장의 교체가 사실상 확실시되는 가운데 전현직 관료 및 정치권 인사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 CEO 교체 이슈가 있는 거의 대부분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모두 직접적ㆍ간접적으로 외압설과 연결돼있는 셈이다. 물론 금융당국은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공개 석상에서 "권위주의 시대처럼 최고경영자 선임에 개입한 일은 없다"면서도 "최고경영자 리스크 관리는 금융당국의 재량이 아니라 책무"라고 발언했다.

    그럼에도 불구, 올해 금융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로 '관치'와 '외압'이 꼽힌다. 현 금융당국은 은행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에까지 훈수를 두는 '미세 개입'을 단행했다. 물론 명시적으로는 항상 경영 자율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었다. '실세 금감원장'에게 주시받고 있는 현장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전보다 자율의 폭이 훨씬 줄었다'는 의견이 훨씬 많이 들렸다.

    관치의 끝은 언제나 주주의 손실로 이어진다. 비전도 책임감도 없는 낙하산 출신 CEO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금융주 디스카운트(할인)의 핵심적인 배경 중 하나였다. CEO를 내부에서 길러내지 못하면 내부 인력들의 로열티와 동기 부여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급 관계자는 "정부가 예대마진까지 관리에 나선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금융주 주가가 지지부진했던 게 불과 4개월 전의 일"이라며 "아무리 배당 매력이 있다고 해도, CEO 리스크까지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라 (금융지주) 지분 보유 규모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