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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회에 아예 기한이익상실(EODㆍEvents of Default)를 확정하는게 어떠냐. 그렇다면 당신네 회사가 받아야 할 대출을 대신 승계해 주겠다"
최근 대형 사모펀드(PEF)가 5년 전 인수한 회사 인수금융(Debt Financing) 만기연장을 놓고 곤욕을 겪을 무렵. 어느 코스닥 관련 회사가 인수금융을 제공한 대주단 소속 금융회사에 남몰래 위와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문제가 된 회사는 대규모 영업적자를 낸 것도 아니고, 현금성 자산만 1300억원이 넘었다. 최대 주주인 PEF가 인수금융 이자를 못내거나 연체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대출 담보로 제공한 주식의 주가가 1/5 토막나면서 담보가치와 LTV가 바닥을 쳐 EOD 사유마저 거론된 터였다. 회사가 멀쩡히 돈 벌고 있는데...원금 상환에 문제만 없다면 이 기회에 대주단은 LTV비율을 조정하고, 최근 금리 수준에 맞게 이율도 올리면서 대출만기를 연장하는 것이 예상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올 한해 국내외 금융시장이 워낙 요동을 쳤다. 여기에 PEF가 인수한 상장회사들 여러 곳에서 인수금융 EOD 사유 발생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대주단에 참여한 은행, 증권사, 보험사들 각각이 겪고 있는 내부사정도 전부 달랐다. 이러다보니 행여 대주단 중 몇곳이 EOD를 확정하고 이 대출채권을 코스닥 회사에 넘긴다면? 코스닥 회사는 대주단으로 새로 참여, 회사에 대해 여러가지 의도성 있는(?) 움직임이 가능해질 터였다. 다행히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주단은 인수금융 만기를 정상 연장했다.
'리캡'(Recapitalization)이라며 주담대 늘려 투자자 배당 줄때는 언제고?
최근 PEF들 사이에서 '인수금융 EOD'가 화두가 됐지만 수년 전엔 되레 '리캡'이 대세였다. PEF가 경영권을 사들인 회사가 갑자기 돈을 2~3배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유동성 장세와 활개 치는 테마투자 등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했다는 이유 하나로 인수금융 대출을 더 늘렸다.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로서도 어쨌든 '주식담보대출'이고 주가상승으로 담보가치가 올랐으니 대출확대가 가능했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따로 영업을 뛰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담보가치가 확실한 고수익 대출 실적이 늘어날 일이었다.
PEF들은 이렇게 늘린 인수금융 대출금을 받아 펀드 투자자(LP)에게 "투자가 성공했으니 미리 배당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생색을 냈다. 이를 '자본재조정' 혹은 '리캡' (Recaptalization)이라는 멋진 표현으로 포장(?) 했다. 처음 '주가 급등 → 인수금융 추가대출 → LP배당' 이 시도될 때 만해도 "정석적인 투자기술이라고 보기 어렵다"거나 "운용사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 보기 어렵다"라며 일종의 '편법' 처럼 취급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른 주가는 떨어지지 않고 MBK파트너스ㆍ한앤컴퍼니 같은 내로라하는 초대형 PEF 운용사들도 하나둘씩 이런 리캡을 단행하면서 어느새 보편화된 기법이 됐다. 리캡은 운용사(GP)는 투자성공을 미리 자축하고, 투자자(LP)는 현금이 들어와서 만족하며, 대주단은 대출실적이 늘어나는 모두가 '행복한' 거래여서다.
유일한 리스크는 "주가가 갑자기 떨어지면 어쩔 것이냐. 다시 담보가치가 떨어지지 않느냐"인데.... 투자금이 넘쳐나던 수년간 이를 걱정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근 화제가 된 IMM PE의 미샤(에이블씨앤씨)와 한샘, 어피너티 에쿼티파트너스의 락앤락 등이 겪는 인수금융 논란은 이와 딱 정반대 상황이다.
미샤는 실적저하폭이 큰 편이었지만, 한샘은 인수한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상황이고 락앤락도 적자까지 진행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가가 급전직하하면서 대출 당시에 설정한 EOD 트리거(Trigger)가 발동, PEF 운용사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는 상장사 투자의 양면성, 즉 주가만 오른다면 투자회사 매각하기도 전에 대규모 배당을 줄 수 있는 '매력'과 주가가 떨어지면 없는 돈이라도 끌여들여 담보가치를 채워줘야 하는 '리스크'가 발현된 상황들이다. 아울러 LTV비율 한도 언저리까지 최대한 인수금융 규모를 늘리는 것이 내부수익률(IRR) 극대화의 '지름길'인 PEF들이 겪는 명암이기도 하다
비상장사라고 안심? "내년부터 만기연장시 5년전보다 금리 얼마나 올려줘야.."
상장사에 투자한 PEF에만 이런 일이 벌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EOD 사유 발생까지는 아니어도 당장 내년부터 인수금융 만기가 도래할 PEF들 상당수는 앞으로 골머리를 썩여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PEF의 인수금융 대출 만기는 대개 5년으로 설정되고, 당시 금리 수준이 반영된다. 인수하는 회사 경영권 주식이 담보로 제공되면서 대출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매출ㆍ영업이익 혹은 상각전이익(EBITDA)ㆍ부채규모, 그리고 주가 등의 몇몇 변수들을 엮어 "이 아래 수치로 넘어가면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한다"라는조건이 포함된다.
문제는 금리. 새해(2023년)을 기준, 2018년에 PEF들이 사들인 회사의 대출 만기가 돌아온다. 이때까지 회사를 매각하지 못한 경우, 결국 대주단과 만기연장을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2018년 3%를 좀 넘기던 인수금융 금리는 올해 폭발적으로 오른 금리인상을 감안하면 내년 연장 과정에서 적어도 두 배 이상은 뛰어오르게 된다.
그간 PEF들은 경영권을 인수한 회사에서 '배당' 등을 받아 인수금융 이자를 내왔는데, 금리가 2배로 뛰면 내야 할 이자도 2배로 오른다. 당연히 이 투자에서 기대해온 내부수익률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투자회사도 자신이 진 빚도 아닌데 이걸 갚아주느라 기존보다 2배 이상의 이익금을 PEF에게 넘겨야 한다. 이 기간이 내년부터 3년 혹은 5년간 이어지는 셈이다.
2018년에는 KCC-SJL파트너스 펀드의 모멘티브 인수를 비롯, 여러 중대형 거래가 많았다. 이들이 그간 매각을 단행하지 못했고 5년 짜리 인수금융을 썼다면 세부사정은 대동소이하지만 대부분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PEF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수면 아래에 있지만 각 PEF들이 보유한 투자회사 인수금융 만기연장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더 큰 문제는 금융시장리스크가 커지면서 은행ㆍ보험사ㆍ증권사들이 대출만기를 선뜻 쉽게 동의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행여 회사 적자폭이 커졌다면 만기연장은 더욱 지난한 협상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투자가능자금(Dry Powder)이 넉넉지 않은 PEF들은 이제 ▲투자금 모집 경쟁은 격해지고 ▲인수금융 금리는 더 올려줘야 하며 ▲투자한 회사 경영권 매각을 단행해도 대기업들이 은행 대출 받기가 어려워 인수를 망설이거나 가격을 깎거나 거래를 취소하기까지 하는 3중고를 내년부터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의로 EOD를 내달라"는 수준의 비정상적인 접근이 다양한 형태로 제안 될지도 모를 일이다.
취재노트
주가급락으로 상장사 투자한 PEF들 골머리
EOD 확정하면 대출 승계 제안까지 나와
수년 전 '리캡'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상황
비상장사도 내년 인수금융 만기도래시 금리 급등 불가피
주가급락으로 상장사 투자한 PEF들 골머리
EOD 확정하면 대출 승계 제안까지 나와
수년 전 '리캡'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상황
비상장사도 내년 인수금융 만기도래시 금리 급등 불가피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2월 09일 10:4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