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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시장은 일단 안정세를 찾는 분위기다.
채권 시장을 흔든 ‘트리거’였던 레고랜드 개발사업. 이와 관련해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액면금액 2050억원의 제 3회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지난 12일 강원도의 SPC 지급금 지급 의무 이행으로 연체 이자를 포함한 이자 및 원금 전액이 상환 완료됐다.
지방자치단체 신용보강을 통해 발행된 유동화증권이 ‘디폴트’ 나면서 유동화증권시장은 물론, 채권 시장 전반에 불안감을 빠르게 확산시킨 것에 비하면 그 끝은 싱거웠다. 이번 사건으로 지자체 신용보강 유동화 구조에서 의회 의결 등의 수권이 확보되고 관련 계약 등이 적절히 구성됐다면 관련 지자체의 의무 또한 반드시 이행될 수 있음을 재확인시킨 게 의의라면 의의다.
또 다른 ‘트리거’였던 한국전력공사의 채권발행 한도 증액. 국회에서 증액건이 무산됐지만, 시장은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채권 발행 한도를 늘린다고 해서 한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했다. 한도 증액 무산이 되레 전기값 인상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점을 강조하게 됐다. 그리고 이게 현실화하면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 속도는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더 커졌다.
어느 정도 악재에 익숙해져서인지, 시장 눈높이의 디폴트 값이 낮아져서인지는 모르지만 크레딧 시장의 안정세는 완연해지고 있다. 크레딧 채권의 신용 스프레드는 이전보다 줄었고 공사채들은 민평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건들이 늘었고 대기업들의 수요예측에도 돈이 다시 몰리기 시작했다. 내년초 한 해 동안 필요한 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한 숨을 돌릴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이런 온기가 기업들 전체에 퍼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일단 내년 초 조달 환경은 불과 1년 전 금리에 몇백bp 이상을 얹어줘야 한다. 등급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여기에 추가적인 조달비용이 더 필요하고, 위기의 새로운 확산이 불거질 수 있다. 당장 12월 정기평가가 진행 중인데 신용평가사들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있고, 또 불필요한 위기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상반기까진 등급에 긍정적인 소식들이 많았지만 3분기에 급변했고 이후로는 하향 우위로 돌아섰다. 그리고 지금의 분위기는 전반적인 신용도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해외 평가사들과 공동으로 잇따라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재무 체력은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소비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일례로 국내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 수치가 악화하고 있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 3분기에 매출 100대 기업 중 18곳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등급을 보유한 글로벌 신평사들도 이들 기업의 이자보상배율 수치가 작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향후 몇 년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놨다. 해외 채권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조차 금리 인상으로 이자는 높아졌는데 영업현금흐름은 점점 줄어드니 기업들이 채무를 감당할 체력이 소진되고 있다는 얘기다. 저금리 기간 동안 설비투자나 M&A를 위해 레버리지를 부쩍 많이 일으킨 기업들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에 올라가 있는 심정이다.
건설 같은 경우 이전보다 금융의 역할이 훨씬 커진 점이 불안감을 계속 잠재하고 있다. 채안펀드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고는 하지만 중소형 건설사 또는 지방 건설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레딧 리스크가 다시 금융시장으로 전이, 시장 전체를 경색에 빠뜨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의 신용 문제가 일단락 됐지만, 실물의 침체가 새로운 신용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게 다시 금융으로 이어지고 가계부채 문제까지 건드리게 되면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은 소수에서 다수가 되고, 감내해야 하는 시간은 곱절이 될 수 있다.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12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