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올인베ㆍABL생명 등 매물 많지만…금융사 비은행 확장은 '일단 정지'
입력 22.12.22 07:00
다올인베 등 금융사 매물 봇물…우리금융 등 후보군 부상
가격두고 이해관계자 의견차이 커…거래 성사 쉽지 않아
연말 인사 등 내부 상황도 혼란…실효성 있을지도 의문
  • 다올인베스트먼트(다올인베), ABL생명, 롯데카드 등 올해 하반기부터 금융사 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정작 잠재적 인수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직까지 금융시장에 유동성 위기감이 남아있는 가운데 연말 인사와 맞물리며 인수합병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릴 금융사들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혼란스런 금융시장 속 ‘알짜 회사’가 매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잠재적 인수자들이 망설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다올인베나 ABL생명, 롯데카드 등 금융사 매물들의 시장 가격이 높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다올인베 몸값으로 약 2000억~2500억 수준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다올투자증권이 보유한 다올인베 지분 약 52%에 대한 가격이다. 다올인베 전체의 시가총액이 약 3000억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가격이 높다는 지적이다. 희망가격을 둘러싼 매도자와 잠재적 매수자 간 의견차이가 약 1000억원 가까이 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최근 VC(벤처투자) 업황 악화로 비교회사들의 주가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탓이 크다. 지난해 말 다올인베 상장 당시 PER 멀티플은 약 11배 수준으로 산정돼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가 약 5800억원 규모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 아주IB투자, 우리기술투자, 미래에셋벤처투자 등 당시 비교회사들의 주가는 절반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ABL생명 역시 최근 보험사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펀더멘털 평가가 그리 좋지 못한 상태다. 작년 여름부터 현지에서 매각설이 돌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인수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롯데카드는 지난 9월 예비입찰 진행 당시 하나금융그룹 등이 유력 인수후보로 떠올랐지만 매도자인 MBK파트너스와 가격을 두고 의견차가 생기면서 현재 매각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통상 금융사 매물은 정해진 기간 안에 고수익을 꾀하는 일반 사모펀드(PEF)가 인수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금융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대형 금융사들이 SI(전략적투자자) 입장에서 인수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유력 잠재후보로 떠오른 금융사들 역시 당분간 인수합병보다는 내부 안정을 꾀할 상황이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다올인베의 유력 잠재후보 중 하나인 우리금융은 내부 상황을 감안하면 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다. 최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위로부터 라임 사태 관련 ‘문책경고’를 받았다. 

    회장 연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룹 차원의 인수합병에 속도가 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최근 함영주 회장 체제로 조직개편에 한창인 하나금융그룹 역시 상황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내부적으로 다올인베 인수를 검토했다가 포기했다는 전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 내부에서도 괜찮은 증권사나 VC 매물을 적극 검토하자는 기류가 있었긴 하지만 ‘괜찮은 매물’의 기준이 굉장히 높아진 상황”이라며 “운용업계 출신 이사진들도 있는 만큼 매물 검토를 까다롭게 보는 편이다. 다올인베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꼭 인사 이슈가 아니더라도 금융지주들이 내년부터는 전반적으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는 분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영환경 속에 수천억원 단위의 대형 인수합병보다는 신사업 진출 위주의 보수적인 접근 방식이 더욱 적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증권사들 역시 대규모 희망퇴직이나 감원 정책을 펴야 하는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지주들 대부분 내년에는 성장보다는 건전성이나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분위기”라며 “대형 인수합병보다는 비금융 플랫폼 등 규모가 크지 않은 신사업 진출을 타진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운용역 이탈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새로운 VC 설립의 효율성이 더 높다는 의견도 있다. 이직이 잦은 VC업계 특성상 인수 후 인력 이동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만큼 차라리 처음부터 새 인력 영입에 힘쓰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다. 

    매각설이 불거진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일찍부터 핵심 운용역 이탈이 이어지고 있고,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 역시 신한금융그룹에 인수된 이후 일부 인력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역을 새로 채우기 위해서는 기존 회사를 인수한 뒤 또 다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부가적인 비용이 더 드는 셈이다.

    한 VC 대표는 “구주를 사오는 비용으로 앞으로 채용할 운용역들의 성과급을 파격적으로 제안하는 편이 장기적인 회사 성장에 도움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