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여전채·PF 브릿지론 만기 앞둔 캐피탈사…연말 지표부터 걱정
입력 23.01.09 07:00
여전채 23조·브릿지론 73% 상반기 중 만기 도래 예정
차환 비용 400bp 이상인데…유동성 우려 커지는 상황
작년부터 시작된 브릿지론 돌려막기…부실화 가능성
연말 지표·분양 성적표 두고 캐피탈사 부실 우려 가득
  • 올 상반기 중 캐피탈사가 발행한 여전채 약 23조원과 지금까지 진행한 브릿지론 73%의 만기가 돌아온다.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 예정된 상황에서 여전채 스프레드(가산금리)도 높게 유지되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본격화할 경우 캐피탈사의 자산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할 전망이다.

    4일 기준 A0 등급 여전채 1년물 스프레드는 285bp(1bp=0.01%)로 여전히 200bp 이상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4분기 들어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치솟는 가운데 시장 혼란이 가중되며 스프레드가 무리하게 치솟은 탓이지만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어 당분간 여전채 발행 금리는 현 수준을 오갈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신용평가 업계에선 연말로 갈수록 캐피탈사가 발행한 여전채 만기 물량이 늘어날 예정인 가운데 차환 발행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차환 부담이 늘어난 것은 캐피탈사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캐피탈채와 같은 여전채는 시장이 위축될 때 발행에 드는 비용이 가장 가파르게 치솟는 종목으로 꼽힌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중 캐피탈사는 만기 여전채를 차환할 때 최대 468bp의 이자를 더 물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조달 비용이 치솟자 우량 캐피탈사도 여전채 대신 장기 기업어음(CP) 등으로 선회하며 만기 구조를 짧게 가져가기 시작했지만 지속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조달 환경 악화가 일시적 충격에 그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결국엔 차환 발행을 이어가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수년 동안 할부리스 외 기업대출과 투자금융 등 자산 만기가 장기화한 탓에 차입부채 만기를 단기화할수록 유동성 리스크는 올라간다. 수신이 불가한 캐피탈사는 유동성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금융업종으로 통한다. 

    이미 신용도 A등급 이하 캐피탈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은행계 캐피탈사 10곳과 비은행계 캐피탈사 15곳은 3개월 수준 단기 유동성 대응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발행 시장 회복세가 더딜 경우 계열 지원이나 신용공여(Credit Line)을 확보하기 어려운 A등급 캐피탈사의 장기 유동성 관리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브릿지론 부실화 가능성은 차환 발행보다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평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캐피탈사 보유 영업자산 부동산 프로젝트 금융(PF) 대출 비중은 11.9%다. A등급 이하 캐피탈사의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비중은 200% 안팎으로, 절반가량이 브릿지론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73%가 상반기 중 만기를 맞이한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브릿지론을 받아 간 사업장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부동산 PF 사업은 시행사가 토지 매입 및 초기 사업비를 마련하기 위해 브릿지론을 받으며 시작된다. 인허가를 받고 시공사를 선정한 후 착공에 들어가기 위한 본 PF를 받아야 앞서 실행한 브릿지론을 상환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하반기 대구와 경주 등 지방을 시작으로 잠재 시공사들이 원자잿값 상승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기 시작하며 상환 길이 막혔다. 시장에선 이때부터 본 PF로 넘어가지 못한 브릿지론의 돌려막기가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캐피탈사 관계자는 "부동산금융 부서에선 대구와 경주 건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나뉘고 있다. 해당 지역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실무진 중에선 일찌감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라며 "이미 9월부터 대형 건설사들이 '삽을 뜨기 전에는 착공에 들어간 것이 아니니 준공 책임에서 자유롭다'라는 궤변까지 내세워 발을 빼려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본 PF는 앞선 브릿지론과 별개로 사업 타당성을 검토 받아 진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건설사들이 난색을 표했다면, 올해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전망인 가운데 정부 정책까지 변화할 수 있다. 브릿지론이 본 PF로 넘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단 얘긴데, 금융사로선 브릿지론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곧 발표될 캐피탈사의 지난해 연간 실적 발표에서 연말 건전성 지표가 어떻게 변화했을지도 관건이다. 신용평가 업계에선 4분기 캐피탈사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지난 3분기 말까지만 해도 캐피탈사 기업대출에서 요주의 이하 자산 비율은 3.4% 선에 그쳤다. 2021년 말에 비해 0.1% 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아직 부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대출 자산의 경우 부동산 관련 비중이 높고 구조가 복잡해 부동산 경기 전망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원금을 만기 일시 상환하는 구조라 부실이 지표에 빨리 반영되지 못한다. 

    이어 드러날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 성적표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둔촌주공의 분양 성적이 저조하면 수도권 내 미분양 주택 규모가 늘어나며 전국 부동산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전매 제한과 실거주 요건 규제를 5년 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은행권에서도 둔촌주공에서 미분양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는 가운데, 몇몇 금융사는 지방 브릿지론 문제로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관측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이르면 하반기쯤 시장 환경이 조금 회복세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그 이전에 추가로 금리가 오르면서 부동산 경기가 더 빨리 꺾일 가능성이 있다"라며 "계속해서 조달난이 이어질 텐데 지원을 받기 힘들고 신용도가 낮은 캐피탈사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