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 발 들인 은행, PF 리스크 분산일까 전이일까
입력 23.01.19 07:00
PF 부실 사태 이후 거리 둬왔던 은행
부동산 연착륙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
"선순위라 위험성 크지 않아" 평가 속
부동산 회복 불투명해 불확실성 여전
"마지막 안전판인만큼 분명 부담" 지적도
  •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부동산금융 시장 리스크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있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꾀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단기금융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규제도 풀면서 분양 시장에 온기를 넣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비은행 금융권의 PF 뇌관은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다.

    최근 수년간 부동산금융 시장은 증권사, 상호금융, 저축은행, 캐피탈, 보험사 등 비은행권이 주도해 왔다. 은행들은 2011~2013년 PF 부실사태 이후 부동산 부문 여신 취급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2022년 9월말 기준 은행의 PF 대출은 30조8000억원으로, 2013년말(21조5000억원) 대비 43.6%가량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비은행금융기관의 PF 대출은 13조8000억원에서 85조8000억원으로 522.4% 급증했다.

    PF의 핵심이 레버리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금리에서 고금리로의 급변은 상황을 순식간에 악화시켰다. 레고랜드 사태, 롯데건설 유동성 이슈가 불거지면서 부동산 PF 시장의 위기감이 증권업계는 물론 제2 금융권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는 금융시장의 마지막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금융위원회 주도로 5대 금융지주(신한·우리·하나·KB·NH)는 총 95조원(2022년 11월1일)의 지원조치를 발표했다. 95조원의 지원계획 가운데 은행이 90조원가량을 출자하며 사실상 주체로 나섰다.

    지난해 10월 한 달간 5대 은행은 CP와 ABCP, ABSTB를 매입하는데 4조3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 매입에 5조9000억원, 특수은행채·여전채 인수에 6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지원책 발표 이후 채권 시장 안정화를 위해 은행채 발행은 최소화했다. 이 같은 지원책이 순수하게 은행들의 자발적 경영활동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PF 유동화자산들을 적극 쓸어담는 시중은행들의 관리·감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11월 '은행권 금융시장 점검' 태스크포스(TF) 개최 이후 매주 7개 은행(KB·신한·우리·하나·NH·부산·전북은행)의 유동화증권 매입 현황을 은행연합회를 통해 보고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PF 리스크 뇌관이었던 둔촌주공 재건축도 시중은행들이 풀었다. 둔촌주공은 미계약률에 상관없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출 보증을 하기로 했고 은행 5곳(신한·KB·우리·하나·NH)에서 7500억원을 조달했다. PF 사업비 7231억원이 오는 19일 만기 되는데, 그 전에 사업비를 끌어오게 되면서 급한 불은 껐다.

    은행의 등판으로 다소 위기감을 벗어내자 정부는 브릿지론에 대한 지원도 검토 중이다. 이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어떠한 역할을 맡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역시나 수익성이 담보하지 않은 부실 사업장까지 본PF 전환에 성공한다면 잠재적인 리스크가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한동안 부동산금융 시장과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었던 은행들의 영향력 확대를 두고 이것이 PF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일인지, 아니면 은행으로 '전이'시키는 일인지 슬슬 갑론을박이 시작되고 있다.

    과거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를 지속해온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익스포져 증가가 재무적 위험성 증가로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평가도 나온다. 감독당국이 은행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고 PF도 선순위만 들어가고 있어 비은행권에 비해 위험은 크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은행도 개발 금융을 하고 있고 또 일부 은행은 그 규모가 상당히 커 경기가 꺾였을 때 부실이 어디에서 발생하느냐가 관건"이라면서도 "선순위, LTV, 보증 여부 등 위험도 측면에서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의 유동화증권 매입 과정에서 각 사업장의 리스크, 유동화증권의 수익성 등을 면밀히 따지지 못한 채 자금 공급을 지속할 경우 부동산 시장 리스크가 금융권의 마지막 안전판인 은행권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과거 부동산PF 사업이 부실화하면 일부 증권사와 캐피탈사들의 부도로 끝날 수 있었다면, 현재는 부실을 점차 키워가면서 부동산 붕괴가 전 금융권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올인' 정책이 은행의 제 역할을 제한하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은 지금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선 정중동(靜中動)을 원하는데 정부가 부동산 연착륙을 1순위로 잡으면서 은행들은 원치 않게 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되면 돈줄이 좁아져 기업들은 차환 리스크, 가계는 연체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고 또 다른 위기의 전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PF 안정화와 달리 분양 시장이 더 얼어붙고 있다는 점은 부동산 시장의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가장 마지막 단계인 분양시장, 이를 통한 자금회수가 원활히 이어져야 PF 리스크가 완전 해소된다고 볼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 지속 여부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변수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증가하자 정부는 공공기관이 (악성)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임대하는 방안을 꺼내들었다. 지난해 초까지만해도 수도권 내 주택의 미분양 우려는 거론조차 안됐다. 현재는 주택뿐 아니라 오피스와 오피스텔, 상가 및 물류창고 등 PF 사업장의 미분양 공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하락 지속, 자산가치 하락 장기화는 자의반타의반으로 부동산 자산을 떠안고 있는 은행들의 건전성에도 경고등을 켤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작년 역세권 개발 PF 지급보증에 들어갔던 은행이 만기 1개월짜리 초단기 유동화 상품을 개인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흔치 않은 케이스도 있는데 이럴 경우 사업장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사실상 고객들에게 리스크를 전가하는 셈"이라며 "작년 하반기 올스톱했던 은행 PF부서가 올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좋은 사업장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의 부동산 시장 접점은 더 넓어지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리스크 분산 또는 전이라는 결과와 무관하게 은행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부동산 관련 리스크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