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설 경쟁 이은 재무부담…파트너십 지형 뒤바뀌는 배터리 3사
입력 23.01.19 07:00
전기차·배터리 시장 성장세 둔화 전망…연초 '추가 하향'
험로 오른 배터리 3사…공격적 확장戰이 재무 부담으로
전방 시장 낙관하기 어려운 때 이해관계도 새로운 국면
LG엔솔-포드·삼성SDI-GM 등 JV 파트너십 변화도 가속
  • 지난 3년 동안 지속된 국내 배터리 3사의 증설 경쟁과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JV) 파트너십이 변화하고 있다.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완성차 업체의 판매 계획을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파른 투자지출(CAPEX)은 배터리사의 재무적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어 그간의 이해관계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배터리 업계에선 지난 연말 마련한 올해 전기차·배터리 시장 전망치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당초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10년 만에 4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올해 들어 이마저도 낙관적 전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판매가 꺾이면 계획대로 납품해야 하는 배터리 출하량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달 들어 올해 시장 전망을 낮춰 잡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 작년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의 계산 속에서 전기차·배터리 시장은 매년 50% 이상 성장하는 것이 전제로 받아 들여졌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통과시킨 미국 시장의 경우 달러화 강세에 올라타 예상대로 고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보다 큰 시장인 유럽의 경우 일각에선 올 한 해 역성장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기 침체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이 같은 우려는 '완성차 업체의 판매 계획을 낙관할 수 있느냐'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 성장이 본격화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험로에 들어섰다는 평이다. 

    전방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기대, 공격적으로 수주와 증설 경쟁을 벌여온 배터리 3사의 재무 체력에도 명암이 갈리고 있다. 

    투자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을 지난해 국내 배터리 시장의 승자로 꼽는다. 작년 1월 70조원 이상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상장해 10조원 이상의 시장 유동성을 쓸어 담았다. 조달 시장이 바짝 쪼그라들기 직전에 실탄을 두둑이 챙긴 만큼 사업적 실력 이상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반면 비슷한 시기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에 나섰던 SK온은 결국 모회사의 수혈로 급한 불을 끄는 수준에 그쳤다. 삼성SDI의 경우 경쟁사에 비해 신중한 확장 전략이 빛을 발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무 부담에 따라 배터리 3사와 완성차 업체 사이 JV 파트너십 지형도 변화하고 있다. 

    LG엔솔은 현재 포드, 코치(KOC)와 함께 튀르키예 앙카라 인근 지역에 배터리 생산 JV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원래는 지난해 3월 SK온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추진하던 유럽 생산 거점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포드가 한국을 방문했던 시점 이후로 JV 계획이 변화 수순을 밟았다. SK온이 포드의 요청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재무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SK온 측은 "재무적 부담 때문에 해당 JV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라며 "SK온이 수익성 중심 수주 전략으로 선회한 만큼 포드와 튀르키예 지역 내 협력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올해 이후 SK온이 확보한 수주잔고와 고객사 진영에 추가적인 변화가 없을지 주시하고 있다. SK온의 배터리 사업은 지난 4분기에도 약 2000억원 안팎의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를 지나 2분기 중에는 영업익 기준 흑자 전환을 기대하지만 자체 영업현금흐름으로 예정된 증설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LG엔솔 입장에선 힘들이지 않고도 포드 물량을 확보하게 된 상황이지만 기존 생산 JV와는 조건이 다르다. 통상 완성차 업체와의 JV는 지분을 50:50으로 가져가지만, 튀르키예에선 현지 업체 코치가 끼는 만큼 40:40:20(코치) 구도가 된다. 연결 기준으로 LG엔솔의 실적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SK온에서 증설 자금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LG엔솔에 포드의 대규모 수주가 굴러 들어갔지만 LG엔솔 입장에서도 통상적인 JV 구조와는 달라 선뜻 받아들이긴 어려워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SK온의 재무 부담이 가중될수록 다른 JV 등 증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업계 내에서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장 신중한 행보를 보여 온 삼성SDI에도 사업 확장 기회가 열리고 있다. LG엔솔의 최대 협력사인 미국 GM은 지난해 말 삼성SDI를 찾아 새 생산 JV를 요청했다. GM 역시 계속해서 전기차 판매 점유율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만큼 단일 공급사 리스크를 해소할 필요성이 크다. 시장에선 삼성SDI가 삼성전자 사업지원 TF의 허가를 받아낸다면 GM과의 협력이 가시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삼성SDI는 사업지원 TF와 소통하며 사업 전략을 짜야 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며 "지난해 이재용 회장이 승진하며 올해 10월까지 삼성전자와 삼성SDI를 비롯한 계열사 측에 인수합병(M&A) 등 성과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사의 대형 고객인 GM과의 JV가 삼성SDI의 성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