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에서 금융지주까지…주총 앞두고 세몰이 고삐죄는 행동주의 펀드들
입력 23.01.20 07:00
플래시라이트파트너스, 주총 앞두고 2차 공세
얼라인·트러스트·안다운용 등도 적극 행보
'전체 주주이익 제고' 명분에 주주 연대 강조
"적은 지분으로 과도한 영향력" 비판적 시각도
  • 다가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자본시장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거세다. 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 명분 아래 상장사에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 사외이사 선임, 주주환원 정책 등 적극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행동주의 투자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각에선 적은 지분으로 주가와 기업 경영을 뒤흔드는 이들의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플래시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이하 FCP)는 오는 3월 주주총회에 앞서 ‘2차 공격’에 나섰다. FCP는 19일 인삼공사 분리상장, 주주환원 및 거버넌스 정상화 등 안건 제안서를 공식 접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와 황우진 전 푸르덴셜생명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FCP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의 이상현 전 한국 대표가 세운 행동주의 PEF로 KT&G 지분을 1%가량 갖고 있다. FCP 측은 KT&G의 주가가 15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라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FCP는 지난해 10월 KT&G에 대해 인삼사업을 분리하는 등 내용이 담긴 ‘5대 주주제안’을 보냈으나 지금까지 이사회의 답변이 없었고, KT&G 경영진으로부터는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받은 바 있다.

    지난 2일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은 KB금융 등 7곳의 금융지주에 “주주 환원을 당기순이익의 50% 이상으로 확대하라”며 배당을 늘리라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얼라인도 글로벌 사모펀드 KKR 출신 이창환 대표가 세운 토종 행동주의 펀드다. 신한금융지주가 주주 환원 확대 방침을 밝히며 주가가 상승하는 등 시장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다른 금융지주들도 3월 주총을 앞두고 압박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작년 12월 행동주의 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계열사인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계열사더라도 흥국생명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은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을 지원하는 것은 태광산업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배임 행위라고 지적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철회했다. 

    최근 해외에서도 최근 눈에 띄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트라이언 파트너스를 창업한 넬슨 펠츠는 월트디즈니와 회사의 이사 자리를 놓고 주주총회 표 대결을 예고했다. 펠츠는 최근 디즈니의 과도한 스트리밍 사업 투자, 2019년 영화 스튜디오 21세기 폭스 인수 등으로 주주 가치가 훼손됐다며 현 경영진을 견제할 이사 자리를 요구했다. 트라이언 파트너스는 최근 수개월간 9억달러(약 1조1100억원) 상당의 디즈니 주식을 사들였다. 디즈니는 통상적으로 매년 3월 주총을 개최하는데 아직 올해 일정은 발표하지 않았다.

  • “적은 지분으로 과도한 영향력” vs.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 

    ‘행동주의 펀드’하면 과거 소버린자산운용, 앨리엇매니지먼트 등 외국계 헤지펀드의 국내 대기업 공격 사례로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사냥꾼’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우리나라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의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되어 있는 현상) 해결을 주요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랜 기간 이어지니, 체념하고 포기하려는 일부 의식 자체가 주가 반등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고질적인 거버넌스 개선을 통해 주주 이익을 제고하고 기업의 자금조달도 원활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주주의 이익 제고’ 명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들은 다른 투자자들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국내외 기관들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한 개인 투자자들의 지지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주총에서 감사 선임에 성공한 얼라인도 우호 기관들뿐 아니라 일반 주주들의 지지로 표대결에서 승리가 예상됐던 바다.

    얼라인 측은 은행주 캠페인에 대해 “주주서한을 보낸 후 100여군데가 넘는 국내외 기관들과 접촉하며 공감대를 만들었다”며 “무겁던 은행 주가가 올라 투자자들도 만족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FCP도 “국내외 주요 투자자들과 대면 미팅 등을 통해 우리의 요구사항을 자세히 설명했다"며 "KT&G의 주주이자 장기 투자자들인 그들 역시 주주로서 수긍하기 어려운 거버넌스 이슈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보유한 지분 이상으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시각도 있다. 불과 1~5%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주주 여론에 힘입어 회사의 고유 경영 판단을 뒤흔든다는 지적이다. ‘이슈메이킹’으로 주가가 오르면 단기 수익률은 높아지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이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FCP 측은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행동주의를 ‘모두를 위해 노력하는 주주’가 아니라 ‘소수지분으로 참견하는 방해꾼’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이라며 “이러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시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예시를 많이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주식 시장은 경영진과 주주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경영진 친화적’ 투자 원칙 아래, 경영진과 주주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거버넌스 개선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국내에서 행동주의를 지향하는 기관들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개인 투자자들의 행동주의 펀드를 향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들의 행보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는 날로 거세지는데 아직 국내 기업들의 대응 준비 수준은 미숙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대기업에 주주서한을 보냈던 한 기관투자자는 “국내 톱 대기업이지만 주주제안 대응하는 데 있어 부서별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점에 놀랐다”며 “어느 쪽이 무조건 맞다기보다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데, 국내 기업들이 예전보다는 주주들 목소리에 민감해진 것이 맞지만 여전히 대응은 미숙한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