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의 '메리츠-롯데건설' 모델 '독려' 두고 갸우뚱한 금융권
입력 23.02.08 07:00
취재노트
이복현 금감원장, '메리츠-롯데' 사례 "창의적" 독려
정작 시장에선 "예상 밖" 평…10%대 고금리도 가능?
입김 세진 당국 눈치 보던 금융권서도 '이게 아닌데'
시중 자금 고금리 대출 몰려갈까…우려 목소리도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메리츠금융그룹과 롯데건설의 투자 협약을 높게 평가하자, 금융권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다. 사정이 급한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해주기만 한다면, 다소 높은 금리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용인을 넘어 '독려'하는 듯한 뉘앙스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 원장은 지난 26일 보험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메리츠금융의 롯데건설 지원 사례를 "수익성과 공공성을 모두 살린 창의적 상품"으로 소개했다. 해당 발언은 이 원장이 보험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 역할을 충실히 해달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은 지난 하반기부터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형 기관투자자와 시중은행 등을 찾아 당부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 사명을 거론하진 않았다곤 해도 콕 집어 특정 거래에 좋은 평가를 내놓은 것을 두고선 예상 밖이란 반응이 적지 않다. 메리츠금융은 당시 롯데건설과 조성하는 1조5000억원 규모 펀드에 선순위 대출 9000억원을 출자했는데, 금리는 약 12%대로 전해진다. 조건이 알려진 뒤 금융권에서는 '다소 야박한 조건'이나 '고금리'라는 평판이 많았다.

    특히 메리츠금융과 비슷한 시기에 해당 거래를 검토하거나 롯데건설을 찾았던 금융사에선 '이건 아닌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 논리를 따르자면 메리츠금융은 위험도에 상응하는 수익을 취했을 뿐이고, 이 원장의 발언 역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롯데건설이 이보다 나은 조건으로 조달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성사될 수 없는 거래였다. 실제로 해당 거래 이후 롯데건설은 물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유동화 시장 스프레드(가산금리)도 정상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금융당국도 다소 짐을 덜게 됐다.

    그러나 웬만한 금융사라면 시장 경색 이후 금융당국의 입김이 전방위로 세지는 통에 이 같은 구조를 고려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은행지주 계열 증권사 PF 담당 한 실무진은 "우리도 롯데건설과의 거래를 검토는 했지만 그냥 검토에서 그쳤고 아마 승인을 받아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문화 자체가 보수적인 탓도 있겠지만 고금리 장사에 나섰다가 혹여나 눈밖에 날까 싶었던 심리도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경쟁사에선 저런 식의 프라이싱을 고려조차 못 해본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선 해당 투자 협약으로 메리츠금융이 확보한 이자 및 수수료 수익이 세간에 알려진 금리 조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 추정하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 최근 들어 은행의 호실적을 두고 '이자 장사'라는 비난이 부쩍 늘어난 데다 금융사 지배구조가 연일 화두인 상황에서 "오너 기업만이 가능한 고금리 패키지 대출"이라 보던 경쟁사들로선 이 원장의 좋은 평가가 다소 야속하게 느껴진단 말까지 나온다. 

    대형 금융사는 물론 부동산 투자운용 업계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전해진다. 고금리 대출로 시중 자금이 몰려갈 경우 자금 모집부터 투자 집행까지 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연초 들어 시중 대기자금은 인수합병(M&A)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서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금리 급등으로 조달난이 본격화한 만큼 올 들어 매각자 전반이 가격을 낮춰 시장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원매자와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운용사 전반이 당장 손이 가는 에쿼티 투자처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원장의 독려대로 대출만으로 10% 이상 수익을 확보한 사례가 쌓이면 출자자(LP) 설득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메리츠금융에 이어 태영건설을 지원한 콜버그크레비츠로버츠(KKR)와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PEF) 역시 국내에서 블라인드 펀드 자금 소진 기회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까지 패키지 지원 형태로 고금리 대출에 나설 경우 높은 이자 비용을 물면서 가격을 낮추지 않고 버티는 잠재 매물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경색이 다소 완화했다고 하지만 대주단 전반에 온기가 퍼진 것은 아니다. 올해가 되면 차환이나 만기 연장에 실패한 급매물 등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다들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버티는 듯한 상황"이라며 "상반기 중엔 빅딜 기대감은 없고 당사도 부실자산(NPL)이나 대출 펀드 등을 고려하는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