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상생' 언급에 공정위 현장조사까지…롯데그룹 헬스케어 사업은 어디로?
입력 23.02.08 07:00
취재노트
新롯데 주축 '바이오'…'CES 2023' 기술 도용 의혹 일파만파
尹 "대기업도 상생해야"·공정위 현장조사…신사업 순항할까
  • 롯데그룹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헬스케어 부문'이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의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에도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을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이를 재차 언급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도 롯데그룹 현장조사에 나섰다. 

    롯데헬스케어의 스타트업 기술 도용 의혹은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2023 CES'에서 시작됐다. 해당 행사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가 유사한 기술을 탑재한 맞춤형 영양제 분배기를 동시에 선보이면서다. 

    일각에선 알고케어 분배기 기술 자체의 희소성이 크지 않아 도용이 어렵진 않은 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롯데헬스케어가 사업협력을 위해 2021년 알고케어와 접촉한 전례가 문제시 되는 모습이다.

    당시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 측에서 "제품 개발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힌 데 기술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롯데헬스케어가 당시 법인 설립 전이었던 까닭에 비밀유지계약서(NDA) 체결을 못하긴 했지만, '신의칙상 거래 협력관계에서는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판례가 있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부 부처도 이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나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등 정부기관들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본격 의혹이 불거진 지난달 중순, 중기부는 "피해기업이 기술침해 행정조사와 기술분쟁 조정을 신청할 경우, 신속히 조정이 중립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조정 불성립 시 소송비용 지원도 약속했다. 최근 공정위도 롯데지주, 롯데헬스케어, 캐논코리아 등 기술탈취 의혹과 연관된 롯데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현장조사에 나선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스타트업과의 상생,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언급했다. 취임 직후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중소·벤처기업 단체장을 모아놓고 "상생 협력의 길을 열었으면 한다"라고 언급한 윤 대통령은 지난주 'CES 혁신상 기업 오찬 간담회' 에서도 이를 재차 강조했다. 

    해당 간담회에 참석한 한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대기업도 스타트업과 상생·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언급했다"라며 "롯데그룹을 콕 집어 한 발언은 아니었지만, 대기업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갈취 논란이 최근 VC업계 내 화두인 만큼 관련성이 없진 않아보였다"라고 전했다. 해당 간담회에는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도 자리하고 있었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기술 도용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투자 논의가 종료된 이후 자체 디스펜서를 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모방하지 않았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는데 대기업과 스타트업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지다보니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라며 "알고케어 투자협상이 결렬된 이유는 디자인적인 부분들이 사업성이 좋지 않아서며, 알고케어 투자를 접었다고 해서 롯데헬스케어가 사업을 접을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롯데그룹의 헬스케어 사업 전개에 차질이 빚어지진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롯데그룹이 지난해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해 관련 사업에 대해 밝힐 당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은 사업 구상"이라는 평이 나온 바 있다. 지금으로선 개인 의료 정보 활용 관련 규제로 인해 시장규모가 크지 않지만, 규제 완화 이후에는 시장 선점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진다. 

    사업 확장을 앞두고 투자를 본격 늘려야 하는 롯데그룹 입장에선 해당 논란이 달가울 리 없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VC 시장 내 롯데그룹에 대한 신뢰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번 도용 의혹으로 기업 평판이 더욱 악화됐는데, 향후 투자에 있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자금시장이 경색되며 재무적 투자자(FI)보단 전략적 투자자(SI)에 대한 수요가 늘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롯데그룹 논란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

    아이디어 도용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향후 롯데그룹 각 계열사에서 직접 투자검토에 나서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간 롯데그룹 사업과는 관련없는 스타트업에도 적극 투자해오며 호평을 쌓아온 롯데그룹 CVC인 '롯데벤처스' 또한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부분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초 롯데그룹은 CES 2023 행사를 통해 논란의 불씨가 된 디스펜서를 공개하며 올해 사업의 구체화된 내용을 밝힐 계획이었다.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도 아버지 동행 없이 처음으로 참석한 외부행사로 상징성이 부여되기도 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신 상무를 위한 자리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하필 이 때 이슈가 불거진 것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