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제국 둘러싼 '합종연횡' 권력쟁탈戰…"종합선물세트 같은 K드라마"
입력 23.02.15 07:00
취재노트
  •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 분쟁이 한동안 조용했던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기존 회사 경영진이 행동주의 펀드와 손을 잡고 창업자를 물러나게 했고, 경영진은 회사의 새 주인 후보를 데리고 왔다. 이에 격분한 창업자는 한 때 경쟁자를 백기사로 삼아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고 백기사는 이제 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되려고 한다.

    권력 쟁탈전을 다룬 한 편의 드라마에서 누군가는 왕좌에 앉을테고 나머지는 실익으로나 평판으로나 잃을 게 많아 보인다. 결말이 어떻게 되든, SM 경영권 다툼은 앞으로 회자가 많이 될 종합선물세트 같은 K드라마 소재거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30년 제국 레거시 흔들린 이수만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걸 잃은 이는 역시 이수만 SM 창업자다. 지금의 K팝 시장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번 분쟁에서 많은 치부를 드러냈다.

    SM과 별개로 설립한 '라이크기획'이라는 개인회사는 SM 지배구조의 수년째 논란거리였다. SM이 제작하는 음반 관련 업무의 하청업체로 SM으로부터 거액의 인세를 받아온 게 문제가 됐고 이번 분쟁의 발단이기도 했다.

    분쟁 과정에서 오는 2092년까지 무려 70년간 SM의 음원수익 중 6%를 로열티 명목으로 이수만 창업자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황제계약'도 폭로됐다. 이 계약에 따르면 앞으로 3년 동안에만 300억원, 10년 동안엔 500억원 이상이 지급된다. 

    회사 경영진으로부터 쫓겨난 이수만 창업자는 하이브에 자신의 지분을 넘기면서 30년 가까이 일궈온 자신의 제국을 내줘야 했고, SM이 상장사답지 않게 비상식적인 경영을 하고 있었다는 불명예를 안기게 됐다.

    이득은 취하고 명분은 잃을 하이브

    현 시점에서 SM에 가장 가까워보이는 쪽은 이 전쟁에 뒤늦게 참전한 하이브다.

    하이브는 어느날 갑자기 이수만 창업자와 손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이어 대주주 이수만이 보유한 SM 지분 중 14.8%를 4228억원 인수를 선언, 단숨에 SM 최대주주 지위로 올라섰다. 하이브는 소액 주주들이 보유 중인 보통주 지분 25%를 주당 12만원에 공개 매수할 예정이다. 성공하게 되면 하이브는 SM 지분 40% 가까이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하이브가 이수만 창업자와 한 배를 탔다는 거다. 이게 하이브가 그동안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열며 그렇게 강조했던 'ESG'에 부합하느냐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분명 하이브가 SM를 인수하게 되면 글로벌 수준의 기획사가 될 기회를 잡게 되고 사업적으로 충분히 고려할 만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사 단독이 아닌, 사실상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며 회사를 떠난 창업자와 함께 그 회사 인수에 나섰다는 점에서 명분 상으론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고 전했다.

    회사의 몸집이 커지면서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아지고 있다. 하이브는 최근 미국 힙합레이블인 QC뮤직(Quality Control Music)을 3140억원에 인수, 앞서 2021년엔 1조원을 들여 이타카홀딩스를 인수하는 등 몸집을 키우고 있다. 시장에선 하이브가 SM 지분 20% 인수에 필요한 자금으로 6000억~800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어지는 인수 작업에 따른 자금 조달과 재무부담, 인수후통합(PMI) 작업 등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모든걸 잃게 될 SM 공동대표들

    이번 분쟁의 주인공이자 이수만 창업자의 대척점에 있는 이성수 대표는 이수만 창업자의 처조카, 탁영준 대표는 SM 공채 매니저 출신으로 사실상 '이수만의 사람들'로 분류돼 왔다. 그런데 SM 경영진은 지난해 10월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조기 종료했고, 지난 3일에는 이수만 없는 'SM 3.0' 체제를 공개했다. 이에 SM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등 내분이 일어났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30년 가까이 지탱해 온 SM제국 자체가 사라질 단초를 마련했다는 거다. 경영진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를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카카오는 123만주 규모의 신주와 전환사채(CB) 114만주를 인수하면서 SM 전체 지분의 9.05%(약 2171억5200만원)를 확보, 2대 주주가 되겠다고 공시했다. 다음달 초에 거래 단행을 선언했다. 이에 이수만 창업자는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와 CB를 발행하는 경우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아 위법하다"며 신주와 CB 발행 금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게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이 됐다.

    경영진의 의도와 달리 하이브가 참전하면서 SM제국 쟁탈전은 하이브와 카카오엔터의 대결 구도로 압축됐고 회사 주인은 어떻게든 바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현 경영진이 향후에도 대표를 맡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각에선 이번 경영권 분쟁을 내부에서의 권력 찬탈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보기도 한다. 창업자가 믿었던 두 공동대표는 창업자를 '쫓아내고' 내분을 일으키고 회사를 '팔아넘긴다'는 책임에서는 자유롭기 어려워보인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격하된 카카오

    SM 경영진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만해도 카카오엔터는 큰 기대감을 가졌을 것이다. 일전에도 카카오엔터는 SM에 대한 구애를 해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IT 그룹의 일원으로서 몸집을 서서히 키워온 카카오엔터는 아이유, 유재석 등 다양한 분야의 톱아티스트들을 보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K팝에서 약했기에 SM을 인수하게 되면 명실상부 국내 톱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다.

    실제로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 투자총괄 대표는 최근 진행된 지난해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카카오, 카카오엔터, SM 3사의 강점인 플랫폼과 정보기술(IT), 지적재산권(IP) 파워를 결합해 전방위적으로 사업적 시너지를 보여드릴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이브의 참전으로 카카오엔터는 예상치 못한 한 방을 제대로 맞았다. SM 지분을 인수하려고 2000억원을 들였는데 이게 자칫 계륵이 될 수도 있다. 카카오엔터가 하이브에 맞불을 놔서 소액주주 지분 공개매수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막상 일대일로 하이브와 붙자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전쟁에서 카카오엔터는 주연이 될 뻔한 조연이라는 평가가 붙었다.

    싸움 벌이고 실익은 아직 못얻은 얼라인

    이 싸움을 시작하고 불을 붙인 쪽은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이다. 지난해 SM 주주총회에서 지분 1.1%를 가진 얼라인은 소액주주를 모아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고 경영진이 얼라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수만 창업자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에 작년 11월 6만2800원이었던 SM 주가는 현재 12만원을 목전에 두며 가장 'HOT'한 종목이 됐다.

    그런데 상황은 꼬였다. 얼라인은 하이브의 참전에 대해 현 경영진과 맞서는 적대적 M&A라고 지칭했다. 또 카카오는 10% 이하 소수 지분 투자라면서 하이브는 경영권을 인수할 거면 프리미엄을 제대로 내야 하는데 하이브가 제시한 12만원은 싸다고 꼬집었다. 또 하이브의 SM 인수는 이해관계 상충, K팝 발전 저해 등 부작용이 동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조병규 SM 사내 변호사는 사내 메일을 통해 적대적 M&A를 시도한 쪽은 카카오라고 반격했다. 소수의 지분을 가진 현 경영진과 얼라인 입장에선 자신들을 지지해 줄 주주가 필요했고 이것이 카카오에 대한 유상증자와 CB 발행의 실체라고 설명했다. 주주 이익을 대변한다는 얼라인이 하이브의 12만원 공개매수가 저가라고 반대한다면 주당 9만원인 카카오 인수에 더 반대해야 옳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얼라인 입장에선 주주이익을 대변하는 행동주의 펀드라면서 현 경영진의 편에서 적대적 M&A를 주도했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단지 SM에 끝날 이슈는 아니다. 얼라인은 여타 기업들에도 주주 이익을 앞세워 목소리를 내고 있다. SM 경영권 분쟁에서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얼라인의 의도가 투자자들에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개연성은 커질 수 있다.

    제국 둘러싼 합종연횡 권력 싸움 드라마

    SM 경영권 분쟁은 마치 '삼국지'나 '왕좌의 게임',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권력쟁탈을 다룬 드라마처럼 전개되고 있다. 혹자는 하이브를 고려, 후백제를 SM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후백제 견훤의 아들 신검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견훤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왕권에 의탁했다. 결국 고려는 견훤을 앞세워 후백제를 정벌했다. 권력 앞에는 아버지와 아들도 없듯이 친인척도, 20년의 세월도 무상하다는 얘기다.

    한국 K팝 시장을 개척한 SM은 왕조를 더 이상 이어가긴 어려워 보인다. 결국 새 왕국을 꿈꾸는 세력의 일원이 되든 거대 IT 그룹의 일원이 되든 새 주인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크다. SM 내부에선 누구는 안된다, 누가 낫다 얘기들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이 역시 뜨거운 관심을 받는 M&A에서 나올 봄직한 언론 플레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사람이 다'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은 언제든 어디로 떠나고 돌아올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자본시장 관계자들과 대중들에겐 말 그대로 '꿀잼'이자 '팝콘각'이다. 신흥 K팝 강자, IT공룡, 행동주의 펀드, 적대적 M&A, 이이제이(以夷制夷), 합종연횡(合從連衡) 등등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인물과 소재, 스토리가 다 들어가 있다. 이 드라마는 이제 도입부를 지나 본격적인 전개를 기다리고 있다. 결말이 어딜 향해 갈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마지막회가 싱거울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