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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투자업계는 부실채권, 이른바 NPL(Non-Performing Loan) 시장 규모가 대폭 성장할 거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분위기 속에서 특히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서 미분양 리스크가 좀처럼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보니 괜찮은 매물들이 나올 걸로 보고 있다. 이에 NPL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투자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부동산 연착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만큼 부동산 NPL 시장의 문이 확 열릴지는 미지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은행권 NPL 매각물량은 채권원금인 미상환 원금잔액(OPB) 기준 744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약 4278억원 대비 크게 늘었다. 작년 전체 NPL 매각 물량은 2017년 이후 계속 줄어 역대 최저인 약 2조4400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4조3000억~4조8000억원으로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래도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상환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는 부실징후 기업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채권은행이 지난해 정기 신용위험을 평가한 결과 185곳이 부실징후 기업(C·D등급)으로 판정됐다. 전년 160곳 대비 25곳이 늘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에 경기가 침체되며 기업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다.
NPL 업계가 특히나 주목하는 분야는 건설·부동산이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고 있으며, 초기분양률도 떨어지는 등 건설지표가 악화 중이다. 주택 매매량은 1년 새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폐업 신고한 건설사는 전년 대비 19% 늘어났다. 자금 조달 이슈로 사업장이 멈추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기연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최근 조달금리가 다소 안정화되면서 유동화증권 발행규모는 소폭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주요 경제지표 등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동화시장의 두드러진 회복세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며 "특히, PF 유동화 및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시장은 당분간 감소세를 보이고, NPL 유동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먹거리가 많아질 것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사들은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KB증권·한국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대형 건설사와 함께 부실 부동산 PF 사업장을 정상화하는 NPL 펀드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수익성과 투자금회수(엑시트)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KB증권은 올해 상반기에 3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PL 펀드는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브릿지론' 단계의 사업장 중 상대적으로 양호한 곳을 회생시키는 펀드다. 증권사가 보험사·공제회 등 재무적투자자(FI)와 함께 사업장을 선별하면 대형 건설사가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해 우발 채무 등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전문 운용사와 부동산 투자전문회사도 적극적으로 NPL 사업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나 미분양담보대출이 사실상 막힌 상태다보니 이른바 '줍줍'할 만한 사업장이 꽤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유진자산운용은 5100억원 규모의 NPL 펀드를 조성해 하반기에 투자를 단행했다. 이지스자산운용도 지난해부터 NPL 블라인드 펀드로 3000억원 이상 설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 NPL 투자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일부 운용사는 내부 펀드 가이드라인을 수정하기도 했다. 작년 1월 우리금융그룹은 2014년 우리F&I 매각 후 7년여 만에 우리금융F&I를 출범했다.
한 부동산 전문 대형운용사 관계자는 "우량자산인데도 불구, 높은 금리 때문에 대출 조건을 못맞춰 사업이 엎어지는 사업장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저렴하게 자산을 매입하는 건 물론이며, 정상화 이후에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서 올해 적극적으로 펀드를 만들고 투자할 계획"이라 전했다.
운용사와 함께 투자하려고 투자단에서도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 유진자산운용이 조성한 NPL 펀드의 경우 우정사업본부·새마을금고·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출자자(LP)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연기금 중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도 NPL 투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2018년 파인트리자산운용을 NPL 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해 2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다만 부동산 NPL 시장 활성화의 가장 큰 변수로는 정부의 '의지'가 꼽힌다. 정부의 PF 유동성 지원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 부동산 관련 NPL 발생량이 아직 많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적어도 금융기관은 살릴 정도의 유동성은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추후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금융당국이 5대 금융지주와 15년 만에 대주단 협의체를 꾸렸다. 협의체는 PF 대출 연장 등 부동산 PF 시장 불안에 대비한 정책을 검토중이다. 부실PF에 금융지주가 자금을 공급할 경우 사실상 대출 만기가 연장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NPL 매물이 시장에 나오지 않고 대거 유보되는 셈이다.
캠코도 올해부터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운용을 직접 담당하고 1조원 규모의 '부실 PF 매입·정리 펀드'를 조성해 정부의 중점 사업을 지원한다. 캠코는 구조혁신펀드의 운용과 더불어 현 정부의 최대 현안인 '부동산PF 시장 안정화'를 위한 펀드 조성에도 나선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대부분 신규 PF는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으며, 분양률이 높더라도 입주율이 낮아 잔금을 구할 수 없으면 상환을 할 수 없어 대부분의 PF 대출이 기술적 디폴트 상태에 들어간다"며 "기분양 사업장의 입주율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권과 건설업계 모두 마땅한 대책이 없어 정부의 각종 지원책만 바라보는 상황"이라 밝혔다.
여전히 높은 PF 리스크, '처참'한 건설 지표
"우량한 사업장도 자금 조달 이슈에 중단"
증권사·운용사·F&I 모두 NPL 펀드 조성 검토
정부 PF 유동성 지원에…"아직 NPL 많지 않아"
"우량한 사업장도 자금 조달 이슈에 중단"
증권사·운용사·F&I 모두 NPL 펀드 조성 검토
정부 PF 유동성 지원에…"아직 NPL 많지 않아"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2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