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몰이' 성공했지만…보완 과제도 명확해진 행동주의 펀드
입력 23.02.16 07:00|수정 23.02.16 07:09
올해 SM 사태 등으로 행동주의 펀드들 존재감 부각
소규모 투자로 화제몰이 성공해도 자금력 한계 명확
변수 생기면 돈과 명분 사이 딜레마 상황에 처하기도
다양한 목소리 당연…누가 절대선이란 인식 경계해야
  • 국내 자본시장에 행동주의 펀드들의 바람몰이가 거세다. 저평가된 주가와 후진적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며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한계도 드러났다. 기존 거대 자본과 '체급차'가 크기 때문에 이슈 제기에 먼저 성공해도 뒷심이 밀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익 실현'이 최대 목표인데 이를 '명분'에 끼워맞추려다 보니 논리가 어긋나거나 기업의 역공을 받는 모습도 나타난다. 전선을 너무 넓혀둔 탓에 캠페인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행동주의 펀드는 얼라인파트너스(이하 얼라인)다. 2021년 설립된 신생 펀드지만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상대로 목소리를 내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규모와 인지도가 적당해 공격하기 수월했고, 창업주로부터 소액주주의 권리를 지키겠다 하니 지지를 얻기도 용이했다. 1%대 지분을 앞세운 '나비 날갯짓'이 카카오, 하이브의 참전이라는 '태풍'을 불러 왔다.

    이 외에도 강성부 펀드(KCGI), 안다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플래쉬라이트캐피탈 등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운용사들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일단 화제를 던지고 시장의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 세몰이가 가능하다. 개인들의 주식 투자가 늘고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것도 행동주의 펀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글로벌 행동주의 관련 데이터 조사기관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은 47곳으로, 2020년(10곳)에 비해 5배 가까이 급증했다. 미국(511개사)이나 일본(107개사)보다는 적지만 최근 증가 속도가 빠르다. 그만큼 한국 자본시장 내 행동주의 펀드의 존재감이 커졌는데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도 많다.

  • 행동주의 펀드는 아직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관심 밖이다. 초기 자금은 관계를 다져온 기업이나 고액 자산가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KCGI가 결국 사모펀드(PEF)의 오스템임플란트 공개 매수에 응했듯, 자금력 차이가 큰 경우엔 활동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얼라인도 '자금력이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 기업을 흔든다는 시각도 감수해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도 역시 남의 돈을 굴리는 '수탁자'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기관투자가 자금이 많은 경우 평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사적 네트워크로 모은 자금을 굴리는 경우에는 '수익성'이 최우선 목표다. 소액주주 입장에선 펀드 편에 서야 할 '고상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펀드들은 지배구조의 불합리함이나 경영의 불투명성을 문제삼는 것인데 이 명분이 흔들리거나 명분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SM의 주가는 12만원을 넘나든다. 얼라인은 SM 현 경영진,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카카오는 2대주주 지분을 확보할 계획인데 주당 투자 가격은 9만원이고, 그 대척점에 있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단가는 12만원이다. 얼라인은 SM의 기업가치가 앞으로 크게 오를 수 있다며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두 주체의 가격차를 합리화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현 칼라일 전 한국 대표가 세운 플래쉬라이트캐피탈과 안다자산운용은 KT&G에 한국인삼공사 분리 상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KT&G는 이들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고, 다른 중장기 주주환원 계획을 밝힘으로써 저항에 나선 형국이다. 같은 회사를 목표로 하면서 펀드들끼리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얼라인은 금융지주 캠페인으로 소기의 성과를 냈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한번에 여러 금융지주사를 목표로 한 것은 여론 형성에는 용이하지만 정교함이나 실효성 면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곳을 먼저 문제 삼고 이후 다른 곳에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는 시선도 있다. 물론 '배당성향 26%'의 벽을 깬 것은 성과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점을 감안하면 주주가치 제고에만 집중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지주는 워낙 정치권과의 연관이 깊고 지배구조도 바꾸기 어려운 터라 행동주의 펀드가 큰 변화를 이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은행 주주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국내는 국민연금과 일부 기관뿐인 상황이라 소액주주가 모여 영향력을 행사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들이 행동주의로 얼굴을 바꿨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펀드 자체가 전적으로 대표의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익숙한데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인색하다.

    해외에선 행동주의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수십조원을 굴리는 운용사도 많다. 회사들은 전문 자문 서비스를 받고, 행동주의 펀드들은 컨설팅을 받는 등 사전 준비가 꼼꼼하다. 국내 펀드들은 아직 미숙한 면이 많다. 요건 갖추지 못한 채 주주제안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개인 자산가들도 '행동주의를 표방한 주가 띄우기'에 나서려는 모습이 나타난다. 기존 행동주의 펀드들의 차별화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철저하게 준비되지 않은 주주제안은 시장의 공감도 회사의 적절한 대응도 이끌어내기 힘들다”며 “시장이 선진화할수록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행동주의와 기업 어느 한쪽이 절대선이라는 의식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