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국적기' 시대 그림자 드러낸 대한항공 마일리지 사태
입력 23.02.23 07:00
취재노트
'개악' 비판에 마일리지 공제 개편안 백지화
아시아나항공 M&A, 고객 이익에 반한다 우려
거래 완료 시 수익성 개선 조치 가속화 할 수도
실익 모호해진 M&A, 기업결합 승인도 불투명
  • 대한항공이 오는 4월 추진하려던 마일리지 공제 개편안을 백지화했다. 개편안은 기존에 지역별로 구분하던 공제 기준을 운항거리별 10구간으로 세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중단거리 마일리지 혜택은 늘지만 장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대한항공은 장거리 노선이 주력이다 보니 개편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각계의 지적이 이어졌다.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은 이미 2019년말 나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항공기 여객 수요가 줄자 2년여를 미뤄뒀던 것이다. 재무 부담이 큰 항공사 입장에선 부채(이연 수익)로 잡히는 마일리지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유효기간은 10년으로 2~3년에 불과한 외항사에 비해 후하다는 평가도 일부 있다. 회사 입장에선 쏟아진 비판들이 억울할 수도 있다.

    마일리지 소동은 '현상유지'로 일단락됐지만, 진짜 문제는 뒤에 도사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2020년 말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국적 항공사 통합'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처음부터 이 결정이 국민들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데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각국의 승인을 얻으려면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이나 운수권(항공편을 취항할 수 있는 권리)을 내놓아야 한다. 영국에선 아시아나항공의 런던 노선을 모두 내놓는 조건으로 심사가 진행 중이다. 대부분 중복 노선에서 대한항공만 살아남는 그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적기 선택지가 하나로 줄어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 전가된다.

    1999년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역시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었는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약간의 가격 인상 제한 조건만 더해 기업결합 승인 결정을 내렸다. 부실기업을 맡아줄 곳은 현대자동차뿐이라는 논리였다. 이는 내수 시장 점유율 70%에 달하는 독점 기업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내 경쟁사가 도태되니 소비자 입장에선 현대차가 설정한 가격을 받아들이거나 점차 비싼 외제차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작년 초 아시아나항공 M&A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일부 노선에 운임 인상 제한, 서비스질 유지, 마일리지 통합시 불리한 변경 금지 등 의무를 부과했다. 아직 M&A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마일리지 잡음이 불거지는데, 거래가 종결되면 더 빠르게 '수익성 개선'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벌써부터 '기내식의 질이 떨어졌다' '승객이 마실 물까지 아낀다' 등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 공정위는 M&A를 불허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진다.

    어쨌든 대한항공은 지금까지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노선을 일부 허물더라도 M&A에 성공하기만 하면 사업 영역은 넓어진다. 외국의 벽에 막혀 거래가 좌초돼도 현상 유지다. 현 정부 고위층과도 해외 기업결합을 위해 면밀히 협조하고 있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하다. 아시아나항공처럼 처분을 기다리는 것도, 경쟁 국적항공사도 없는 상황이니 용감하게 마일리지 개편을 시도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상황은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최악의 보릿고개를 지났고 여객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년여 전 정부의 결정이 틀렸다고 볼수만은 없지만, 이제는 그 판단만이 유일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로선 진행해 온 거래는 지원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전 정부의 판단을 반드시 이어갈 이유도 없다. 주무부처 장관의 원색적인 비판도 뼈아프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여전히 위험한 수준이나 약간의 자본 수혈만 있으면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애초에 과도한 계열사 지원과 상표권 사용 로열티 부담이 없었다면 아시아나항공이 이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