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계열 CEO 선임 절차 손본다는 정부…은행 출신 여전히 '득세'
입력 23.03.08 07:00
정부, 금융당국 CEO 선임 절차 손보나
은행 출신 '득세'…전문성 부재 꼬리표
  • 금융지주 CEO 선임 절차를 손보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지주 CEO에 지나치게 '은행' 출신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산업 분화하고 전문성이 강화하는 글로벌 트랜드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3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금융위원회는 올해 주요 업무 추진계획 중 하나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도 개선과 임원선임절차의 투명성 제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주인이 없는 주요 회사의 CEO 선임 절차는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라며 "승계 또는 선임 절차 과정이 과연 투명하고 합리적인지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지 더 정확하게 파악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금융사의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윤 대통령은 "은행이나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들은 지배구조를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라며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달에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고 선임 과정에서 공정한 상황이 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현재 상황은 꼭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어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하겠다는 생각을 3월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당 개편에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금융지주 산하 금융사들에 지나치게 '은행' 출신 인사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대 금융지주 CEO의 상당부분은 은행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인물들이다. 은행에서 다양한 업무를 추진한 것을 선임이유로 들 수 있지만, 매번 계열사 CEO 인사에 붙는 '꼬리표' 전문성 부재다.

  • 특히 은행 인사과 출신들이 은행뿐 아니라 금융지주의 주요 CEO를 비롯한 주요 자리를 차지하는 관행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금융업의 특성상 '인사과'는 곧 은행에서도 성골라인으로 통하고 이들이 은행뿐 아니라 금융지주 인사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년도 대규모 인사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는 KB금융의 경우, 비은행 계열사 11개 회사 중 6개 사가 KB국민은행 출신 CEO로 채워졌다. 증권업계 첫 여성 CEO로 장기간 재임 중인 KB증권의 박정림 대표는 은행원 출신이다. 2004년 KB국민은행 시장운영리스크부장으로 합류한 뒤 WM본부장, 리스크관리그룹·본부 부행장, 여신그룹 부행장, WM그룹 부행장 등을 역임했다.

    KB금융 보험계열사도 은행 출신 CEO가 꽉 잡고 있는 양상이다. KB라이프생명은 출범을 앞두고 민기식 푸르덴셜 대표와 KB생명 이환주 대표의 공동 대표 선임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은행 출신인 이 대표 단독 대표 체제가 됐다. 이 대표는 1991년 KB국민은행에 입행한 이후 영업기획부장, 외환사업본부장, 개인고객그룹 전무, 경영기획그룹 부행장을 거친 KB맨이다. KB손해보험의 김기환 대표는 KB국민은행에서 소비자보호그룹 상무, 리스크관리그룹 상무‧전무를 역임했는데 손해보험업 경험은 없다고 알려진다.

    신한금융은 비은행 계열사 13개 회사 중 8개 사 대표이사(CEO)가 '신한은행맨'이다. 정운진 신한캐피탈 대표는 신한은행에 입행해 30년 넘게 줄곧 근무했다. 신한은행 일본 도쿄지점 부지점장을 거쳐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팀 부장, 신한은행 종합기획부 본부장, 경영기획그룹장, 부사장보를 두루 거쳐 신한캐피탈 대표로 내정됐다. 

    이승수 신한자산신탁 대표는 신한은행 IB사업부 부부장, 투자금융부 팀장, 인사부장 등을 거쳐 2020년에 신한리츠운용 경영기획본부장으로 2년 재임한 뒤 신한자산신탁 대표로 선임됐다. 이병철 신한신용정보 대표, 정지호 신한아이타스 대표, 조경선 신한DS 대표는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재임하다가 계열사 CEO로 영전한 경우다.

    하나금융 계열사 CEO를 살펴보면 3분의 2 이상이 하나은행 출신이다. 은행업과 사업구조가 유사한 저축은행을 제외하면 하나자산신탁, 하나벤처스 정도만 내부에서 승진했거나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 사례다. 사실상 하나은행 고위직이 하나금융 계열사 CEO를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 이호성 하나카드 대표는 각각 하나은행 중앙영업그룹장, 영업그룹 총괄 부행장을 지낸 '영업통'이다. 박승오 하나캐피탈 대표, 임영호 하나생명 대표는 각각 하나은행 여신그룹 부행장, 리테일지원그룹 부행장을 역임하다 계열사 CEO로 영전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증권, 보험업 등의 전문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은행출신들이 여전히 금융지주 산하 계열사에 CEO를 독식한다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