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규정 마련 나선 KB금융, '해임에도 절반 수령'...하나금융보다 '꼼꼼'
입력 23.03.13 07:00
KB금융, 하나 이어 두 번째로 '퇴직금규정' 제정 추진
주총 통과시 사실상 '한도 해제'…방어논리도 마련 평
윤종규 회장 임기 만료 1년여 앞두고 이사회서 검토
은행지주 견제 거세지는 상황…주총 전 시장 관심 多
  • KB금융지주가 이사 퇴직금규정 마련에 나섰다. 4대 은행지주 중에선 하나금융에 이어 두 번째인데 내용 면에서 보다 촘촘한 규정을 준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당 내용이 담긴 정관 변경과 퇴직금 규정 제정안이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문턱을 넘기면 KB금융 이사의 퇴직금 한도는 족쇄가 풀릴 전망이다. 

    시장에선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전에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하나금융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공로' 관련 특례 조항이 담긴 것은 물론 불명예 퇴임 시에도 퇴직금 절반을 받아 갈 수 있도록 한 내용도 이목을 끈다. 

    7일 KB금융은 이사 보수에 대한 정관 변경과 이사 퇴직금규정 제정 승인의 안이 담긴 주주총회소집공고를 냈다. 금융권은 지난 23일 KB금융이 주총 소집결의를 공시한 이후로 해당 의안에 담길 구체적 내용을 주시해왔다. 정관과 이사 퇴직금규정 유무에 따라 KB금융이 부담해야 할 이사 퇴직금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KB금융이 내놓은 퇴직금규정 제정안을 두고선 앞선 사례인 하나금융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관 변경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공시에 따르면 이사 보수 관련 내용이 담긴 KB금융 정관 제49조에는 '퇴직금 지급은 주총 결의를 거친 이사 퇴직금규정에 의한다'라는 내용이 추가된다. 하나금융을 제외한 다른 은행지주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이사 퇴직금을 주총 결의로 정한다는 규칙만 담겨 있는데, 이를 정관에서 위임한 별도 규정에 따르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다. 통상 법인이 이사에 지급하는 퇴직금의 합법성 여부가 정관을 기준으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구체적 차이는 정관이 위임하게 될 퇴직금규정 세부 조항에서 드러난다.

    상정된 안건에 따르면 KB금융 이사는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 외 해임 또는 감독당국의 해임요구로 퇴임할 경우에도 퇴직금을 최소 절반까지 받아 갈 수 있게 된다. 

    특례 조항에는 수사 또는 형사재판 진행 중 퇴임할 때는 최대 퇴직금 반액까지 지급을 유보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간 감독당국이 금융회사 임원에 내린 중징계 대부분이 문책경고 수준에 그친 데다 징계 취소소송으로 이를 무력화한 사례가 다수인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하나금융과 마찬가지로 '재임 시 특별한 공로가 있는 이사는 별도로 주총에서 결의한 금액을 가산해 지급할 수 있다'는 특례 조항도 담겼다. 해당 특례 조항은 보통 퇴직금규정에서 정한 지급액 기준은 물론 이사 보수한도를 넘겨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한 장치로 꼽힌다. 작년 3월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이 주총을 통해 특별공로금 50억 지급을 결의할 수 있었던 것도 특례 조항 덕이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관 변경이 이사 퇴직금 결정을 별도 규정에 따르도록 하는 중간 과정이면 핵심은 해당 규정에 담길 내용"이라며 "KB금융이 이번에 내놓은 규정은 퇴직금 절대액수를 늘릴 수 있는 내용에서 나아가 감독당국 압박으로 인한 변수까지 방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안건이 모두 주총을 통과하면 퇴직금규정이 바로 시행되는 터라 윤종규 회장의 임기 만료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윤 회장의 임기는 오는 11월 20일까지다. 

    주총에 올라온 이사 퇴직금규정 제정안은 작년 9월 22일 이사회 내 평가보상위원회에 처음 보고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12월 5일까지 두 차례 이사회 보고가 이뤄졌는데, 참석 사외이사 전원은 특이의견을 나타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미흡을 두고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압박 강도를 끌어올리던 시기와 겹친다. 

    주총을 앞두고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시장에서도 해당 안건의 통과 여부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구체적 내용이 전일 공고된 만큼 아직까지 의결권자문사도 의견을 내놓기 전이지만, 최근 은행지주를 둘러싸고 투자 업계는 물론 정부당국의 견제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퇴임이 결정된 이사도 없고 퇴직금규정이 마련되더라도 실제 퇴직금 액수는 다시 주총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정황상 KB금융이 지불해야 할 퇴직금 규모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보인다"라며 "지난해 김정태 전 회장의 50억 규모 특별공로금 지급안에도 38.6%에 달하는 반대표(찬성 61.2%)가 나왔다"고 말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번 퇴직금규정 제정은 지난 12월 타 지주사들처럼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 보완 위해 규정을 명확히 하라는 금감원의 개선·권고에 따른 것"이라며 "퇴직금을 늘리기 위한 목적은 아니며 특별한 공로 및 지급유보·감액 등 특례 조항들도 일반 사례와 관련 법률 등을 반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