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킥스에 국내 보험사 중동 투자 '발목'...尹정부 외교 정책과 '엇박자'
입력 23.03.14 07:00
UAE 인프라투자 난항…증권사 셀다운 포기 사례도
앵커 LP 보험사, 올해 新킥스에 대체투자 부문 위축
‘적격 인프라’ 항목에 OECD 가입국 조건있어 혼란
보험사 위험계수 커질수록 요구자본도 늘어나 부담
尹 중동 영업사원 자처하는데…금융당국은 ‘엇박자’
  • '중동 투자'를 두고 금융 당국과 정부의 기조가 엇갈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할 만큼 중동 세일즈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핵심 출자자(앵커 LP)인 보험사의 투자 허들이 높아지면서 증권가에서 ‘중동 펀드’ 조성을 포기하는 상황이다.  

    이는 올해부터 시행된 ‘신지급여력제도’(K-ICSㆍ킥스) 때문으로 풀이된다. 킥스에 따르면 UAE(아랍에미리트) 등 대다수 중동 지역의 인프라가 적격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경우 보험사가 투자 시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 위험값이 매우 커진다. 인프라 펀드의 핵심 투자자가 주로 보험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킥스 체제 내에선 과거 ‘아부다비 대학캠퍼스 민관합작투자’(PPP)같은 ‘빅딜’을 보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다.

    13일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지역 인프라 투자를 목적으로 한 약 4000억원대 펀드 조성이 최근 무산됐다. 국내 금융사들이 주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펀딩을 시작했고,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캐나다 퀘백주 연기금’(CDPQ)도 참여 의사를 밝혔던 프로젝트였다. 올 1월 윤석열 대통령의 UAE 순방 이후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결국 좌초한 것이다. 

    이 투자 프로젝트는 펀드를 만들어 두바이 주요 인프라 시설을 인수한 후, 이를 장기 폐쇄형 상품으로 구성해 복수의 투자자에게 분산 매각하는 구조였다. 주관사로 참여할 예정이었던 국내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펀드를 총액인수한 뒤 이를 국내외 연기금 및 보험사에 재판매(셀다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핵심 재무적 투자자(앵커 LP)로 참여해줘야 할 주요 국내 보험사들의 투자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해당 프로젝트가 결국 무산됐다. 복수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해당 프로젝트를 검토했으나, 다소 부담이 있는 장기 폐쇄형 구조인데다 (국내 주요 LP들의) 유동성도 넉넉치 않아 총액인수 리스크가 상당하다고 보고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되지 않은 배경은 새 킥스 규정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킥스 규정에 따르면 보험사가 사회간접자본(SOC), 특히 인프라 펀드에 대체투자할 때 상정해야 할 위험액이 기존 지급여력비율(RBC) 제도 대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킥스가 명시한 적격 인프라 투자지역은 ‘OECD 또는 FTSE 지수 선진국’이다. 채권의 경우에만 국제 3대 신용평가 기관이 부여한 BBB 이상 신용등급 지역까지 늘어난다. 

    문제는 UAE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동 지역이 ‘적격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킥스에 따라 노출된 리스크(요구자본) 대비 손실 흡수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자본’의 비율을 최소 100%까지 늘려야 한다. 통상적인 인프라 펀드(장기 폐쇄형)처럼 장기간 보유할 경우, 더욱 높은 위험계수가 책정돼 쌓아야 할 준비금이 더 커진다. 보험사 입장에선 투자시 자본적정성 유지 부담이 일반 투자 건에 비해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적격 인프라의 경우 위험값 설정시 20%를 적용하지만 비적격인 경우에는 49%까지 늘어나 일반 사모펀드(PEF)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부담을 안게 된다”라며 “특히 국내 보험사들은 위험 계수에 민감하기 때문에 적격 인프라가 아니면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OECD 가입국’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세운 것 역시 금융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OECD가 '선진국의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서방 선진국에 가까운 국가들이 주로 소속돼있다"며 "OECD라는 기준을 따르면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튀르키예 등은 적격 투자국이고 UAE를 비롯한 중동 주요국은 비적격국가인데 이는 다소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중동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일부 회사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금융 당국은 ‘일단 기존안 시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아직 국내 금융사들의 중동 투자 건수나 규모로 보아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검토 과정에서 소외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금융 당국의 태도가 윤석열 정부의 행보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중동 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주요국 정상과 해외기업 CEO들을 직접 만나 원자력 발전과 인프라 등 다양한 부문에서 협력 의사를 타진하고, 지난 1월에는 UAE서 300억 달러(한화 약 40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순방에서 거둔 성과를 통해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킥스 시행 전까지 중동은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매력적인 신규 투자처로 인식됐다. 

    지난 2019년 하나증권은 국내 LP 최초로 중동 PPP 사업에 진출, 아부다비 대학 인프라 조성 프로젝트에 수천만달러의 자금을 대출하고 지분을 인수한 바 있다. 이에 자극받은 NH증권은 지난 2020년 상반기 아부다비 가스 파이프라인에 금융을 주선했다. 또한 2021년엔 삼성자산운용이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투자 기업 EIG 파트너스,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다발라’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우디아람코의 송유관 사업 지분 49%를 인수하기도 했다. 

    투자업계에서는 새 킥스 규정이 존재하는 한 국내 금융사들이 이전같이 적극적으로 중동에 투자하긴 어려울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로 LP를 맡아 최종 투자 부담을 지던 국내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진 까닭이다.

    실제 현지 기업 주관으로 현재 중동에서 대규모 ‘세일 앤 리스백’(매각 후 임차) 형태의 부동산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지만, 국내 보험사들은 이에 참여할 엄두 자체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중동 투자와 관련된 내부 방침에 대해 “OECD 선진국 아니면 적격 인프라 사업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투자 자체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캐나다 연기금까지 들어갈 뻔한 ‘빅딜’도 취소되는 판이라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