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ㆍCS 사태에 사실상 멈춘 '긴축'...美 연준 입만 바라보는 증시
입력 23.03.21 10:34
금융리스크 우려 일단 소강 국면...아직 여진은 남아
국내 은행들도 대거 발행한 코코본드 관련 이슈 부각
결국은 경기 이슈...미국 경기 동행지수 하락여부 주목
22일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판단에 금융권 '집중'
  •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ㆍ크레디트스위스(CS) 매각으로 글로벌 긴축에 따른 금융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조만간 결정될 미국 기준금리의 향방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은행지급준비금을 크게 늘리며 '사실상 긴축이 멈췄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증시와 채권시장 모두 일단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다만 CS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코코본드 상각 이슈, 여전한 중소형 은행 신뢰도 이슈, 미국 경기 동행지수 및 소비자 대출 둔화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연준이 증시의 기대만큼 빠르고 적극적으로 기준금리 인하에 다시 나설지도 미지수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지역은행으로 구성된 S&P지역은행 ETF(상장지수펀드)는 1.1% 오르며 장을 마감했다. 지난 15일 저점을 찍은 이후 안정되는 분위기다. CS를 인수하기로 한 UBS 주가도 3.3% 오르며 유럽 증시 역시 1% 이상 상승세를 보였다. 

    21일 오전 국내 증시 역시 강보합으로 상승 출발한 가운데 은행주 및 보험주가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 추이만 보면 SVB 파산에서 CS 매각으로 이어지는 금융시스템 우려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이슈가 다른 은행이나 금융권으로 전이되거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급 폭풍으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문제는 고금리ㆍ빠른 긴축으로 인한 경기 이슈라는 지적이다. 이번 SVBㆍCS 사태 전까지만 해도 금융시장에는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경기 침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노 랜딩'(No landing) 기대감이 컸다. 이번 사태로 인해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고금리가 이전까진 작동하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사례가 확인되며,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미국의 2월 경기선행지수는 11개월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동행지수는 지난해 2월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선행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경기 동행지수까지 꺾이면 경기침체 가능성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거란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모기지 금리, 자동차 할부 금리, 신용카드 여신 금리 등 실물경제에 작동하는 모든 금리가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전반적인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지난달의 낙관론은 아직 시중에 풀린 돈이 많은 상황에서 물가상승이 둔화하며 생긴 일시적 골디락스(물가상승 없는 성장)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 국내은행의 자본 시스템에서도 큰 축을 차지하는 코코본드(CoCo-Bond) 이슈 역시 여진이 지속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CS는 UBS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173억달러(약 22조원)에 달하는 코코본드를 전액 상각처리하기로 했다. 

    코코본드는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되는 조건을 담은 후순위 채권으로, 은행이 발행할 경우 일정부분 자기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채권이다. CS는 조건에 따라 전액 상각했다는 입장이지만, CS 주식을 가진 주주들에겐 합병 후 주식을 일부 지급하기로 하면서 채권자보다 주주를 먼저 챙겼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로 인해 코코본드 투매가 일어나며 유럽 시장에선 일시적으로 코코본드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유럽 코코본드 시장 규모는 2700억달러(약 352조원)에 이른다. 국내 금융지주 및 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 잔액도 약 35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주식(에쿼티)를 먼저 상각한 후 코코본드를 포함한 채권을 상각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시장의 출렁임은 일단 진화가 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권의 시선은 오는 22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로 쏠리고 있다. 지난달 말만 해도 미국 기준금리(현재 4.50~4.75%)가 3월 동결될 가능성은 '제로'였지만, 현재 시카고상품거래소 국채 선물 가격은 약 24%의 동결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최근 3월 기준금리 동결 의견을 내놨다.

    다만 현재 SVB 파산으로 대표되는 미국 지역은행 사태에 대처하는 연준의 자세로 볼 때, 이번 FOMC에서 기존의 긴축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을 판단을 내릴 거라는 전망이 아직까지는 좀 더 우세하다. 이 때문에 이번에 기준금리를 올릴지 말지보단, 향후 기준금리 예상치를 나타내는 '점도표'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질지 더 꼼꼼히 체크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전략담당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재빠른 행동은 과거 금융위기를 겪어봤던 경험에서 나온 것 같지만, 이러한 유동성 공급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금리 변동성에 비해 주식 변동성은 높지 않다는 건 연준 해결력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다는 뜻인데, 아직 충분히 주가가 바닥을 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