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 안해본 티낸 IB들…삼성증권은 HMM 매각 주관 반사이익
입력 23.03.24 07:00
HMM 매각, 수백억원 자문료에 수임 경쟁 치열
자문료 눈치 싸움 예상됐지만 김빠지는 결과
관련법에 따라 입찰 하한 마지노선 정해두는데
일부 회사 규정 파악 못해 하한가 밑으로 입찰
"국가 계약 경험 문제"…경험 많은 삼성證 수임
  •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올해 들어 HMM 지분 매각을 본격화 했다. 두 회사가 가지고 있는 지분 40.65%와 주식 전환 가능성이 있는 영구채가 잠재 매각 대상이다. 수조원대 규모, 제한된 원매자, 꺾이는 업황 등 어려운 요소가 많다 보니 매각 자문을 따내도 실익이 많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매각자가 강력한 매각 의지를 보이고, 여기에 막대한 수수료까지 책정되면서 국내외 증권사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재무자문은 최대 518억원, 회계는 21억원, 법률은 16억원의 자문료 예정가격이 정해졌다. JP모건·모건스탠리·씨티글로벌마켓증권·UBS·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글로벌 IB와 삼성·미래·KB·NH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매각 자문 출사표를 던졌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20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한 후 정성평가를 진행했고, 22일 자문사들이 제안한 수수료를 확인했다. 치열한 자문 수수료 눈치 싸움이 예상됐는데 결과는 다소 김이 빠졌다. 일부 증권사들이 제안서 제출 기준을 숙지하지 못하며 스스로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다.

    HMM 매각은 산업은행 등이 매도자로 나서면서 국가계약법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매각 업무를 맡길 곳을 정하기 위해 경쟁입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경우 낙찰자 선정의 기준점이 될 가격을 정해둔다. 역량이 비슷한 곳들이 경쟁한다면 이 가격보다 ‘얼마나 낮은 값에 일을 맡을 것이냐’가 당락을 가를 핵심 요소다. 이번엔 눈높이를 조금 낮추더라도 수백억원의 보수를 쥘 수 있다.

    다만 용역 가격을 무제한 낮출 수는 없다. 과거 정부 측 자문 실적을 쌓기 위해 ‘0원 투찰’ ‘1원 투찰’ 등 사례도 있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일정한 한도를 두고 있다. 예정된 가격의 60% 아래로는 쓰지 못하도록 하고, 그보다 낮은 금액을 써낼 경우 산식에 따라 페널티를 부과하는 식이다. 예정가격이 500억원인 용역이라면 300억원 미만을 써낸 곳은 선정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번 HMM 매각 주관사단 선정도 마찬가지다. 전체 100점 중 가격 요소에 20점이 반영됐는데, 예정가의 60% 수준에 가장 가까운 곳이 20점을 받고 그 위로 가격이 올라갈수록 19점, 18점, 17점으로 낮아지는 방식이다. 60% 아래로 써낸 곳은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셈이다.

    22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조달철, 각 자문 제안사 관계자들이 참여한 상태에서 치러진 자문료 확인 절차에서도 무색한 상황이 벌어졌다.

    국내사 중 NH투자증권과 KB증권은 예정가의 60%를 한참 밑도는 금액을 써내 ‘당선권’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IB 한 곳도 60% 미만의 가격을 제시해 순위가 밀렸다. 입찰제안요청서(RFP)에 가격에 대한 내용이 안내돼 있는데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가격을 써낸 당사자들도 현장에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당혹해 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IB 한 곳은 RFP 내용은 확인했으나, 세부적인 계산에서 실수했다. 자문 가격은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이 IB는 향후 부가가치세 추가를 염두에 두고 60%보다 살짝 낮은 금액을 써냈다. 가격 확인 절차가 끝난 후 매각자 측 관계자들에 착오가 있었다며 읍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수년간 국가계약법 적용을 받는 거래가 많지 않았다. IB와 대형 증권사가 가질 만큼 대규모 수수료를 주는 경우는 더더욱 희박했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나 공공기관 쪽 일을 맡아서 해본 이력이 없는 곳이거나, 인력 물갈이로 경험있는 인사가 빠져나간 곳들은 이번 자문사 선정 절차가 생소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경험 부재로 인한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크레디트스위스(CS)가 불참한 것도 변수였다. 산업은행 자문에 특화된 CS가 있었다면 이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고, 다른 IB의 참여 역시 저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CS는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대신 유력 인수 후보와 접촉하는 분위기다. 인력이 줄며 최근 자문 시장에서 존재감이 줄어든 골드만삭스도 제안을 넣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그룹 등과 관계를 가져온 골드만삭스가 유력한 인수자를 찾아 등장할 것인지 관심사다.

    한 매각자 측 관계자는 “제시가의 60%에 가장 가깝게 낸 곳이 20점 만점을 받고 그 다음부터 가격이 높아지는 순서대로 19점, 18점, 17점을 받는 식인데 60% 미만을 써내면 자문사로 선정되기 어렵다”며 “일부 자문사가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 같은데 정부 입찰에서 실수했다고 바꿔줄리는 없으니 헷갈리면 물어보고 진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HMM 매각 자문은 4곳이 '자진탈락'한 모양새라 실질 경쟁은 JP모건, 씨티, UBS,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간에 이뤄졌던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나랏일’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JP모건과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은 장기간에 걸쳐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에서 손을 맞췄다. 씨티와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은 예금보험공사의 한화생명 지분 매각 작업을 맡기도 했다.

    HMM 매각 주관사는 결국 삼성증권이 선정됐다. 이번 거래는 국내 대기업 상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내 증권사에 유리하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삼성증권으로 공이 돌아갔다. 삼성증권은 최근 조직 개편 등을 통해 IB에 힘을 싣고 있다. 2012년엔 산은지주 기업공개(IPO) 대표주관사로 선정된 이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