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빠진 SM엔터 분쟁…'얼라인파트너스' 몫 정산은 아직 안 끝났다
입력 23.03.29 07:00
취재노트
돈·시간 있는대로 써놓고 리스크만 노출된 하이브와 카카오
진흙탕 싸움서 손 더럽히지 않고 이득 챙긴 '영리한'(?) 얼라인
스타덤 올랐지만 곤란한 질문엔 '무응답'으로 일관한 덕?
정말 소액주주 대변했다면 카카오건, 하이브건 "제값 내라" 했어야
제3자배정 신주발행 막고 기존주주 피해 막아낸 건 결국 법원
  • 하이브가 카카오에 양보하는 식으로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은 금세 김이 빠져버렸다. 시쳇말로 '다 식은 떡밥'이긴 한데,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 같지가 않다. 양자 못지않게 이번 사안에 깊숙이 관여한 얼라인파트너스도 정산할 건 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분쟁에서 하이브와 카카오는 돈과 시간을 있는 대로 쓰면서도 여러 평판 리스크에 노출됐다. 여론전 가운데 '배신'이니 '노욕'이니 낙인으로 남을 법한 후문이 많이 쏟아졌다. 양사 모두 실익이 불투명해지자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서둘러 봉합했으니 승패를 따지기도 무색해졌다. 그러나 싸움에 나섰던 당사자가 각자 판단에 따른 책임을 지는 구조라 더 문제 삼을 건 없어 보인다. 

    신기하게도 양사 합의 전까지 가장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얼라인파트너스 얘기는 어느새 쏙 들어갔다. 분쟁 과정에 적지 않게 개입했으나 얻어 간 것만 있고 잃은 게 없어 보인다. SM 주가가 빠지고 있다지만 펀드 수익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이 원했건 아니건 간에 이창환 대표와 펀드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점잖게 표현하면 얼라인파트너스가 이번 분쟁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한 덕일 것이다. 꼬아서 보자면 이렇다. 장바닥에서 싸움판을 벌여 놓고 호객에, 해설에, 판돈까지 걷어놓더니 싸움 끝날 때쯤 유유자적 인파 속으로 몸을 숨긴 식이다. 왜 그렇게 보일까.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떠받들어줄 준비가 된 여론과 언론을 향해선 쉴 새 없이 입바른 소리를 늘어놨는데 정작 행동주의 펀드로서 답해야 할 대목은 끝까지 모른 체하며 뭉개다가 이내 조용해졌다"라며 "수 자체는 얄팍하지만 대중 속성에는 잘 부합하니 정치를 해도 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다. 얼라인파트너스는 SM의 카카오 대상 증자 결정에 참여했으면서 끝까지 이게 맞는 방식인지 아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해당 증자 결정은 이번 분쟁의 시작이자 끝이다. 

    하이브는 SM이 제3자 신주 발행으로 카카오에 길을 터주면서부터 개입할 명분이 생겼다. 카카오는 돈을 덜 써서 좋고, SM 경영진은 이수만 전 총괄을 내보낼 수 있어 좋은데 정작 다른 소액주주 모두가 피를 보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이사회가 증자를 결정할 당시 참석자 중 하나다. 입장을 떠나 뜯어말렸어야 할 자리에 하여간 있었다는 얘기다. 

    SM 경영진은 이수만 전 총괄과 함께 경영했던 당사자로서 그런 식으로라도 카카오그룹과 손잡는 게 최선이라 내다봤을 수도 있다. 경영진이 당장은 주주 가치가 희석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득이 될 거라 확신하고 직접 주주 설득에 나섰다면 아예 못 들어줄 정도의 주장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주주 활동을 벌여온 얼라인파트너스도 경영진의 이런 비전에 동의를 표할 수는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에게 핵심은 '왜 꼭 그 방식이어야 하는지'에 있다. 카카오가 낫냐, 하이브가 낫냐는 부차적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누가 어떤 청사진을 마련했건 SM 주주로서 "낮은 가격에 지분 희석 방식은 안 된다. 제값 주고 들어오시라"라고 얘기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입장 자체를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SM 경영진에 "역사적인 일을 했으니 응원해 줘야 할 일"이라고 치하했다. 이창환 대표가 앞서 이사회 참여가 확정됐을 때 "자본시장과 산업계 역사에 길이 남을 사례를 만든 SM 경영진의 역사적 결단에 찬사를 보낸다"라고 SNS에 쓴 것과 마찬가지로 낯뜨겁다. 

    이사 자리를 보장받아서 그러지 못했다면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고, 문제인 줄 몰라서 그랬다면 역량 미달이다. 만약 처음부터 SM 경영진과 카카오그룹과 '원팀'이어서 함구한 거라면 그간 내놓은 입장은 모두 거짓이 된다. 세 경우 다 행동주의 펀드 타이틀을 스스로 내려놔야 할 정도의 결함으로 보인다. 

    이번 분쟁에서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마땅히 했어야 할 소임은 법정이 대신했다. 

    SM은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를 꼭 발행해야만 하는 경영상 목적을 소명하지 못했다. 법원은 이수만 전 총괄이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가 가로막지 않는다면 이 전 총괄과 하이브가 낭패를 보는 게 아니라 얼라인파트너스를 포함한 SM 주주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고 못 박은 것이다. 

    기존 주주를 구제한 건 법정이고, 경영권 분쟁에 돈을 쓴 건 카카오·하이브인데, 마땅한 승자는 없어 보이고 주인공 노릇은 얼라인파트너스가 다 했다. 

    떠들썩한 여론에 올라타 세간 이목을 즐기며 유례 없이 이름값은 드높였는데… 행동주의 펀드로서는 도대체 무슨 소임을 다 했는지 궁금하다. 카카오와 SM 경영진에 쌍심지 켜고 반대는 못할지언정 일말의 아쉬움이라도 표했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진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