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서 PF 지원 회의론"…증권사와 '운명공동체' 나선 건설사들
입력 23.04.06 07:00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부실 PF 지원 가능할까 당국 의문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기 전 건설사 구조조정 전망 나와
신평사 "생존하려면 증권사와 한 몸 돼라"
증권사, 고금리 장사지만 자금 회수 어려울 가능성도
  • 건설사가 증권사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운명공동체'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금융당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원이 멈추더라도, 증권사의 자금을 확보한 이상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금융당국의 부동산 PF 지원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 이 기조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3월 6일 '회사채·단기금융시장 및 부동산 PF 리스크 점검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관련 부실 위험 방어와 건설사 자금 애로 해소를 위해 올해 28조4000억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부동산 PF 부실 위험이 건설사나 신탁사의 도산 위기로 파급되지 않도록 지난해 말 발표한 계획보다 규모를 5조원 늘렸다. 

    또 자금 조달에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PF 사업장은 단기 자금을 장기 대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특례보증 지원을 확대하고, 부실 우려가 있는 사업장은 다음 달부터 'PF 대주단 협약'을 적용해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PF 지원 기조와 관련해 금융당국 내부에서 회의론이 생기고 있다고 전해진다. PF 리스크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기 전에 정부에서 사전 구조조정을 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지 당국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100조원 이상 투입했지만 PF발 부동산금융 시장 리스크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 간접적인 지원을 포함하면 실제 지원 규모는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비은행 금융권의 PF 뇌관은 여전히 살아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3일 공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비은행권 전반에서 부동산 PF 위험노출(익스포져) 규모가 확대됐으며, PF 대출 연체율 상승 등 부실 위험이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말 비은행권 전체의 부동산 PF 익스포져 규모는 115조5000억원에 달했다. 2017년 부동산 PF 익스포져를 100으로 했을 때 기관별 작년 9월 말 익스포져는 ▲여신전문금융회사 432.6 ▲저축은행 249.8 ▲보험사 204.8 ▲증권사 167로 각각 높아졌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그동안 수면 위에 드러난 부실 PF 규모가 100조원 정도인데, 막상 까고보니 이보다 몇 배에 달한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라며 "신탁사·2금융권 등 나날이 터지는 익스포져를 얼마나 더 지원해야 하나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PF에 대해 본격적인 점검과 대응에 나섰다. 국내 1위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회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첫 검사 대상이 됐다. 지난 2월 말 금감원은 이지스자산운용의 현장 조사를 완료했다. 해당 검사는 정기 검사가 아니며, 이상 징후나 문제 소지가 있는지 등을 검사했다는 설명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부동산 자산 설정 규모는 지난해 말 24조448억원이다. 삼성SRA자산운용(2위)은 12조2612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3위)는 11조5670억원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우 부동산 자산 설정 규모 중 PF 관련 금액이 절반 뿐이라 가정해도 자산운용사 한 곳의 PF 익스포져가 10조원 가량 된다. 이외에도 사모펀드에서 부동산 PF에 출자한 금액이 많다고 전해진다.

    건설사들은 정부의 PF 지원이 줄거나 멈출 경우를 대비해 증권사의 자금 지원을 받아 '한 몸'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금융기관은 한 곳이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연쇄적으로 파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건설사는 몇 군데 망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모든 건설사를 다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건설사를 신속히 부실 처리하고 금융기관을 살리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건설사 살리기'가 멈추더라도 건설사가 증권사의 지원을 받은 이상 증권사는 건설사에 유동성을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건설사가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손실은 증권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도 건설사에 증권사에 적극 지원받으라 조언하고 있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건설사를 돌아다니며 '증권사와 운명공동체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파이프라인 확보를 잘해라'고 생존 방식을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건설이 올해 첫 '스타트'를 끊었다. 롯데건설은 지난 1월 메리츠증권에 1조5000억원 규모로 투자 협약을 체결해 자금을 지원받았다. 메리츠증권이 선순위로 9000억원, 롯데물산·롯데호텔·롯데정밀화학 등 그룹 주요 계열사가 후순위로 약 6000억원을 출자했다. 조성된 펀드 자금으로 1분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PF 유동화증권 1조2000억원을 상환하는데 사용할 목적이었다.

    태영건설과 코오롱글로벌은 한국투자증권에게 자금 지원을 받기로 했다. 태영건설은 한국투자증권과 2800억원의 금융 조달 상품 협약을 체결해 2000억원을 받았다. 코오롱글로벌은 2680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리파이낸싱을 위한 투자 협약을 맺었다.

    현대건설·GS건설·롯데건설·포스코건설 등 1군 건설사도 KB금융그룹의 부채담보부증권(CDO) 발행을 통해 5000억원 규모 브릿지론 대출 지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은 추가로 지원할 건설사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건설사가 힘든 시기에 자금을 지원하면 향후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때 건설사를 상대로 사업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인한 수익은 덤이다. 

    계열사나 부동산을 담보로 삼아 리스크를 헤지할 수도 있다. 메리츠증권은 롯데건설을 지원하며 그룹의 대다수 계열사를, 한국투자증권은 태영건설의 루나엑스CC 골프장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했다. 

    한 증권사 PF 담당자는 "회사가 어려울수록 대출 금리가 높아 쏠쏠하게 이자 장사를 할 수 있다"며 "추후 거래 관계도 만들 수 있어 그룹사에 딸린 건설사 위주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는 건설사에 지원한 증권사 자금이 오랜 기간 물릴 위험이 존재한다. 대형 건설사라 할지라도 분양·입주가 원활히 이뤄져야 대주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사업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현금흐름이나 담보자산가치가 훼손돼 증권사는 투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