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오는 자본시장의 봄…'눈치보기'만 치열했던 시장 참여자들
입력 23.04.06 07:00
1분기 들어 유동성 기근 다소 풀렸지만
SVB 등 국내외 금융 불안에 다시 주춤
기업·자문사 할 것 없이 눈치 싸움 치열
소문에 예민한 시장… 개인도 희비 교차
  • 작년 하반기 이후 자본시장을 옭아맨 유동성 기근은 올해 들어 조금씩 풀리는 듯했으나 국내외 금융 시스템 위기가 고조되면서 다시 살얼음판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시장이 역동성을 찾을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반등을 확신하긴 어렵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대형 거래에선 수임 경쟁이 치열했고, 기관투자가들의 지갑이 언제 열릴지 살피는 것은 더 중요해졌다. 시장의 심리가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출렁이니 뉴스와 루머 사이에서 울고 웃는 사례가 있었다. 기업과 개인, 사모펀드(PEF) 할 것 없이 비싸게 팔려는 곳과 싸게 사려는 자의 기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눈치를 봐야 할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작년 실적과 올해 주가가 하락한 곳들이 많으니 기관은 물론 똑똑해진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도 신경써야 한다. 카카오처럼 경영진이 대규모 연봉과 상여를 챙겨간 곳은 날선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주주환원책을 내도 경영진의 이익과 결부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예전엔 기업 오너와 이사회의 의견이 절대적이었으나, 현대백화점처럼 주주총회를 넘지 못하는 사례도 속속 나타난다. 명분과 전략에 따라 파급력이 갈리긴 하지만 행동주의펀드는 존재 자체로 성가시다. KT, 포스코 등 주목받는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입이 신경쓰인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에 연일 ‘지배구조 개선’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거래 시장의 분위기는 아직 차분하다. 기업이나 PEF들은 물밑에서 ‘열린 행보’ 중이다. 좋은 제안이 있으면 거래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위기가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자문사들은 호황기에 확충한 인력을 활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HMM 매각에선 국내외 투자은행(IB)이 총출동해 각축을 벌였는데, 삼성증권에 공이 돌아갔다. 산업은행의 ‘출제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문료를 가격 하한선 아래로 ‘소신 제안’한 곳들이 많았다. 탈락한 일부 IB는 산업은행에 억울하다며 재고를 읍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PEF, 벤처캐피탈(VC) 운용사들의 자금 모집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기근은 넘겼다지만 기관들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작년부터 펀드 결성에 나섰거나 올해 움직일 곳들은 경쟁 전략을 고심한다. 관(官)에서 나오는 자금의 규모나 성격, 분배 주체가 달라진 점도 변수다. ‘큰손’ 새마을금고에 대한 검찰 수사가 출자 규모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금융조달 환경은 작년보다 나아졌다. 10%를 넘나들던 금리는 6~7% 수준으로 내려왔고, 증권사들이 대형 거래에서 적극 부담을 떠안기도 한다. 1분기 인수금융 분야에선 은행들의 성적이 좋았다. 아직 시장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금력 있는 은행들을 참여시켜 위험을 나누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 회사채 시장은 예년처럼 ‘연초효과’를 누렸다. 수요예측마다 대규모 투자금이 몰리며 주관사와 투자자 모두 간만에 분주한 한 분기를 보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도 이에 편승했는데, 온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가 이어지며 시장의 출렁임이 커졌다. ‘타이밍’을 놓친 기업들은 다시 시기를 조율해야 한다.

    증시 문은 조금씩 열리는 분위기다. 오아시스마켓 상장(IPO)처럼 ‘주관사의 이해’에 초점을 맞춘 경우는 실패했지만, LB인베스트먼트와 같이 흥행에 성공한 곳도 나타난다. 대어들의 증시 입성은 자신하기 어렵다. 특히 작년에 상장을 철회한 곳들은 시장 흐름에 더 민감하다. 증권사 사이에선 대형 거래보다, 작은 기업 여러 곳을 맡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츠(REITs)의 매력은 전만 못한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점차 자본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가 많았지만 SVB, CS 등 문제가 불거지며 기업도 투자자도 다시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자산들의 몸값 거품이 여전하다는 시각이 많다 보니 당분간은 투자 시장이 호황을 맞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분기는 개인들의 눈치 싸움도 불꽃이 튀었다. 올해 들어서만 오스템임플란트, 한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등의 공개매수가 진행됐는데, 하이브의 SM엔터 공개매수(매수가 12만원) 외엔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다. 개인 투자자들은 공개매수 가격과 득실을 따져가며 주가를 만들고, 주관사들은 공개매수 ‘서비스 표준 가격’을 형성해갔다.

    하이브가 주당 18만원 이상에 카카오 공개매수에 나설 것이란 루머에 기대를 건 개인들은 평가손을 봤다. 최근엔 토스뱅크 뱅크런 우려가 퍼지며 예금자들이 노심초사했다. 예금보호한도(5000만원)를 넘어서는 예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