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는게 아닌데"…10조 풀면 벤처 업계가 살아날까?
입력 23.04.24 07:00
취재노트
  •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위원회가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10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에 나선다. 돈 줄이 말라 고사직전에 놓인 벤처 업계에 자금을 유동성을 공급하겠단 취지다. 유동성 공급으로 당장 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을 기대효과가 있다. 

    그러나 해당 자금이 실효성 있는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VCㆍ스타트업 업계는 지금 한 없이 부풀었던 거품이 꺼져 가는 시점이다. 현 시점에서의 1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본 공급은 거품 제거 효과를 없애고, 자생력이 없어 퇴출돼야 할 기업을 유동성의 힘으로 강제연명 시키는 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연간 100원의 이익도 내지 못하는 회사가 수 조원대의 가치를 인정 받은 사례를 무수히 볼 수 있었다. 기업공개(IPO)의 결승선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쿠팡은 이제야 날개를 달았지만, 나머지 유니콘 그리고 데카콘으로 불리며 끝 없이 치솟을 거 같았던 기업들의 몸 값은 크게 쪼그라 들었다.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또 한번의 기회를 노려볼 만하지만, 이 역시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고 투자자들은 기약 없는 수년의 기다림을 지속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과도한(?)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은 ‘성장성’이란 단어로 상쇄가 가능했다. 돈을 못 벌어도, 자산이 없어도, 기업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부가 벤처와 스타트업 업계에 돈이 흘러들어가지 못하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듯 하다. 다만 직접 투자에 나서는 주체들이 "자금이 부족한가?" 아니면 "투자할 곳은 넘쳐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사실 VC업계에선 이미 결성한 펀드의 자금 소진 고민을 토로하는 곳이 많다.

    그렇다면 "돈은 왜 돌지 못하는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먼저다.

    VC업계에 투자하는 PEF운용사 한 대표급 관계자는 현재의 시장 상황에 대해 "대기자금은 너무나도 많고, 투자를 기다리는 곳들도 많다"고 평가했다. 이어 "밸류에이션에 대한 거품이 꺼져 가는 시점에 출자자들이 기업의 직전 펀드레이징 라운드 대비 마이너스(-) 밸류에이이션이 아니면 출자를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투자 '테마'도 뚜렷하지도 않다. 즉 플랫폼, AI, IT, 바이오 등등 벤처·VC업계에서 한번씩은 흐름을 탄 분야들이 이젠 성장성을 담보로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2차전지 관련 기업의 투자가 가장 활발한데 이마저도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가 아니라 "너무 비싸서 투자를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러한 유행의 끝도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초·중기 기업들의 기업들의 가치가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투자자들이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은 유동성의 파티 끝에 한 번은 겪어야 할 후유증이었다. 정부가 모태펀드의 축소를 통해 정부의 부담을 줄이고 민간 자본 유치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을때 만해도 ‘올 것이 왔구나’로 인식하는 투자자들도 많았다.

    "수영장에 물이 빠져야 누가 발가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말과 같이 진짜 실력을 드러낼 투자자들이 나타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고, ‘돈의 맛’에 취한 그리고 성장성으로 포장된 기업들의 민 낯이 드러날 기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전례 없는 자금지원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엔 벤처기업에 약 30조원의 정책자금을 신규 투입하겠다고 발표했고, 3개월만에 10조원 규모의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의 VC 지원책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을 책임질 전도유망한 기업을 길러내고, 이 과정에서 자금이 선순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책들의 바탕에 얼마나 정확한 현실인식이 깔려있는지는 다시 한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유동성 공급이 아니라, "선제적 구조정이 먼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정부의 지원책은 간결하고 강력하다. 연명의 연명을 거듭하는 부동산 업계, VC 업계에 내놓은 지원책이 그렇다. 눈이 먼 돈에는 편승을 넘어 기생하는 주체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자칫 쓰러져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기업들을 유동성의 힘으로 살려내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