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키우려는 예보, 자회사 IPOㆍ금안계정 카드 '만지작'
입력 23.04.26 07:00
예보 광폭 행보…SGI서울보증 IPOㆍ금안계정 도입 박차
금융위기 주관기관 위상 강화하고 공적자금 회수하려는데
활동 중심엔 유재훈 사장…뒷배로 금융위 있다는 비판도
금융위, 금감원에 밀린 존재감 키우려 하지만 쉽지 않아
  •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금융안정계정 사업과 자회사 SGI서울보증(서울보증보험)의 IPO(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존재감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해석되나, 현재까지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는 평가다. 금안계정은 국회 정무위원회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고, SGI는 연내 상장 계획을 접은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예보의 광폭 행보 뒤 유재훈 사장을 가교로 한 금융위원회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금융업계에서 금융감독원이 절대적 입지로 자리잡자, 이에 조바심을 낸 금융위가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예보와 손을 잡았다는 해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보는 최근 관련 TF를 중심으로 법안심사소위에 개정안을 상정시키려 우회 지원하는 등 금융안정계정 제도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당 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으로, 이번 회기 내에 통과되지 못하면 무산된다. 

    금융안정계정은 예보 내 기금 일부를 활용해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금융사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현재 예보는 은행을 비롯해 보험사ㆍ금융투자사ㆍ종합금융사ㆍ저축은행 등 각 금융사로부터 재원을 받아 고유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새 계정을 신설하고, 각 계정으로부터의 차입금ㆍ보증료 수입과 예보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을 모아 ‘유동성 위기 전용 계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에서 금융당국이 추진했던 유동성 지원 대책을 상시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보 관계자는 “유동성 공급 규모는 논의 중으로, 정해진 한도는 없지만 어떤 업권이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달라질 것”이라며 “계정 내 유동성이 모자랄 경우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발의해서 통화를 지원하고, 예보는 금융사에 지급보증 형태로 간접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제도는 이번 회기 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 의원들이 적극 반대하고 있고, 윤한홍 등 일부 여당 의원들도 모럴해저드 등을 문제삼아 법안 통과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금융안정계정 법안이 통과되면, 예보는 유동성 위기 대응 과정에서 금융사들에게 대출ㆍ지급보증 외에 출자 지원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여야 할 것 없이 현 국회에서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예보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 

  • 정치권 일각에서는 예보의 ‘뒷배’인 금융위원회가 존재감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예보의 권한을 무리하게 확대하려 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각종 금융사안을 놓고 끊임없이 ‘파워 게임’을 벌여왔던 금감원이 최근 검사 출신의 이복현 원장을 중심으로 입지를 강화하자, 이를 의식해 예보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예보는 금융위원회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유재훈 예보 사장 역시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모피아’(퇴직 후 거대 세력을 형성한 재정기관 출신 관료)다. 유 사장이 지난해부터 공석에서 “금융안정계정 제도는 예보의 기관 차원에서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라는 요지의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예보가 미국의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금안계정을 추진하려고 하지만, 미국은 중앙은행인 Fed(연방준비제도)를 거치고 재무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 책임지는 구조”라면서 “반면 예보의 금융안정계정은 금융위가 관할하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예보가 자회사인 SGI서울보증의 IPO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에도 금융위의 위기의식이 작용하고 있을 거란 분석이 뒤따른다. 

    금융위는 예금자보험법에 따라 오는 2027년까지 SGI에 투입된 공적 자금을 회수해야만 한다. 10년 넘게 상환우선주와 배당을 통해 자금을 회수했음에도 회수율이 전체 금액의 40%에 불과하자, 금융위가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와중에도 서둘러 IPO를 재촉했다는 것이다. 예보는 SGI의 상장 이후 2~3년동안 34%의 지분을 분할 매각할 계획이다.

    증권사에서 IPO 실무를 담당하는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시장 상황에서 SGI서울보증의 상장은 쉽지 않다”며 “해외 사례에 대입해도 PBR(주당순자산비율)은 0.3배, 0.4배 수준에 예보의 국세도 포함돼 있어 밸류를 제대로 인정받기엔 단점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SGI는 사실상 국유자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낮은 밸류로 억지로 상장시킬 수 없으니 차일피일 밀리고 있다”며 “정무적 이유로 시작된 거래이기 때문에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