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망하면 총선 괜찮겠어?' 뱅크런을 무기로 쓰는 금융사들
입력 23.04.27 07:00
취재노트
SVBㆍ부동산PF 사태로 대두된 중소형 금융사 유동성 위기설
대마불사 넘어선 소마불사?…총선 앞두고 뻔뻔해진 금융사들
시장에 부정적 메시지 줄 가능성…컴플라이언스 무용론까지
  • “이러다간 우리나라가 내년 총선 때까지만 존속할거란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최근 금융권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여소야대(與小野大) 형국에서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일부 금융사들이 이를 기회 삼아 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총선 전 금융사고가 민심의 향방을 가를 수도 있는만큼,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를 대관 업무의 '지렛대'로 삼는 행태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금 국내 금융권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은 부동산금융 리스크다. 시한폭탄으로 자리잡고 있다. 브릿지론과 본PF(프로젝트파이낸스) 대출의 만기가 절반 가량 몰려 있는 올해 6월이 최대 고비로 평가된다. 

    부동산PF 사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가장 약한 고리인 저축은행과 캐피탈부터 올해 상반기 중 분명 리파이낸싱에 실패하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들은 다른 금융사들과도 대주단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줄줄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SVB(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CS(크레디트스위스)의 몰락, 도이체방크 위기설 등 글로벌 금융권에서도 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권 관계자들은 어지간하면 올해까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잠시 부침을 겪을 순 있어도 결국엔 정부 지원으로 살아날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실제로 여의도에서 A저축은행과 B상호금융사는 국회의사당과 금융감독원의 ‘단골 손님’으로 유명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금융 당국이 사측에 불리한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바로 찾아가 읍소 행렬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이들이 하는 주장은 단 한 마디로 요약된다. 

    "이거 소문나서 우리 수신(受信) 빠지면 뱅크런 발생할 텐데, 감당할 수 있어?"

    이런 무책임한 공갈협박을 두고도 정치권은 총선을 이유로 넓은 포용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야 모두 금융권 리스크를 안고 선거를 치룰 수 없으니, 부실을 눈 앞에 두고도 외면하는 셈이다. 정부가 사사하는 지원금은 금융업계에서 ‘아무도 망하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로비금으로 취급된다.

    야당 소속 정무위 관계자는 “문제가 될 만한 B사의 지역별 연체율을 알고 있어도 공표하지 않고 있다” 며 “아무래도 (위기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시인했다. 

    이 같은 ‘총선 수혜’는 저축은행과 캐피탈, 중소형 증권사 등 작은 규모의 회사일수록 더욱 크게 누릴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상가ㆍ오피스텔 등 ‘고위험 고수익’ 상업용 부동산PF 시장에 뛰어든 중소형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0.38%로 전년(3.71%) 대비 급증했는데, 일부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연체율이 20%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부실 우려가 큰 PF만을 골라 집중적으로 대출을 제공했던 행동이 위기로 되돌아온 셈이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쓰러지면 정권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회사를 살려야만 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라며 “큰 회사는 자생 가능성이 높다. 덩치가 작은 회사일수록 정부랑 한몸”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이는 국내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부터 SVB까지 1조 달러가 넘는 대량의 구제 금융을 시행했다. 스위스 정부도 스위스 1위 은행 UBS가 헐값에 CS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무기로 내부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개선 없이 넘어가려는 중소형 금융사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도 이들이 시장에 주는 부정적 메시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시장실패 보완의 수준을 넘어 자생력이 없는 좀비 회사들을 구제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까닭이다. 

    앞선 관계자는 “금융 지원은 어쩔수 없다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서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며 “그렇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내부 컴플라이언스에서 리스크를 경고하는 사업도 오로지 수수료만 많이 받는다면 수행하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