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펀드 위기론…현지 실사·대응 마련에 분주해진 국내 투자자들
입력 23.05.02 07:00
심상치 않은 해외 부동산…브룩필드도 채무불이행
국내 운용사·출자자 해외 출장길에 자산 점검 분주
자산가치 하락으로 LTV 높아지면 비용 부담 커져
위탁운용사와 수시로 소통하며 대응 방안 찾는 중
  •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고금리 기조에 자금조달 시장이 경색되고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투자회사도 부동산 담보대출 상환에 실패할 정도다.

    그간 해외 부동산 투자를 빠르게 늘렸던 국내 출자자(LP)도 손실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운용사와 수시로 소통하며 현지 실사를 통해 자산 점검에도 나서는 등 분주한 분위기다.

    최근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뉴욕 출장에서 국민연금이 투자한 빌딩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위탁운용사와 투자 현황 및 리스크 요인을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공제회 및 주요 연기금 실물 투자 담당자들도 해외 출장길에 나서 투자자산을 점검하고 있다.

    A 공제회 관계자는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분위기가 안 좋아 최근 출장길에 보유 중인 투자자산을 확인하고 왔다"라며 "시장 상황상 매각도 여의찮고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수도 있어 현지 운용사와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실물 투자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김정근 삼성SRA자산운용 대표이사는 지난 2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현지 투자자산을 보고 왔다. 그 중에선 매입가가 1조5000억원에 육박한 뤼미에르 빌딩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 파리 최고의 오피스로 손꼽히는 빌딩이지만 고금리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타격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김 대표가 뤼미에르 빌딩 점검에 나선 원인으로 추가 출자 가능성을 꼽는다. 요즘과 같이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대출이 매입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 금융기관에서 대출 상환을 압박할 수 있다. 부동산펀드가 자산을 매입할 때 대부분 금융기관의 대출을 활용하는데 계약상 LTV(매매가액 대비 대출 비율)가 일정 수준을 상회할 경우 대주단 측에서 대출 원금의 일부를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

    B 공제회 관계자는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담보대출비율이 당초 계약서보다 높아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라며 "자금 보충 가능성에 유의하고 있으나 아직 발생하진 않았다. 자금투입을 해야 한다면 내부에서 우선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 미국의 주요 상업지구는 물론 유럽으로까지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번지자 자금 조달 이슈가 본격 부상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자산가치 하락과 더불어 금융기관의 보수적 대출 관리 기조로 대출 규모가 줄어든 영향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은 작년 상반기부터 LTV를 하향 조정하고 있으며 대출 기조도 점차 보수적으로 되고 있다.

    운용사 입장에선 금융사로부터 조달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줄 수 있어, 또 다른 자금 마련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먼저 부동산펀드가 쌓아둔 예비비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필요한 비용의 규모가 크다면 펀드 수익자들의 동의를 얻어 추가 출자를 받아야 한다. 출자자가 많을수록 내부 합의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치솟고 자산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부동산 펀드들의 LTV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대주단의 자금 회수로 작년에 이미 EOD(기한이익상실)가 난 펀드도 있지만 최근 들어 더욱 빈번해지는 분위기"라며 "국내 LP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국내 LP는 위탁운용사와 수시로 소통하며 현지 자산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자산 매각이 어려워 당장 자산을 줄이기도 쉽지 않은 만큼 당분간은 관망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C 공제회 관계자는 "운용사로부터 투자자산 현황에 대해 수시로 보고 받고 있고 운용 전술 변화에 대해서도 의견을 보태고 있다"라며 "당분간은 안정성이 뛰어난 자산 위주로 신중하게 투자하며 관망세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D 공제회 관계자도 "매 분기 리스크 법무실과 공동으로 정기운용전략회의를 개최해 펀드별 운용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라며 "최근과 같은 시장침체기에는 수시로 운용사와 소통하면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