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로 드러난 한국사회 고위층 재테크의 '민낯'
입력 23.05.04 07:00
Invest Column
  •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의 여진이 계속 되고 있다. 아니, 더 커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주범으로 지목된 투자자문사 대표 라덕연 씨는 직접 인터뷰에 나섰지만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녹취록이 등장하면서 의혹은 더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투자한 가수 임창정 씨는 피해자냐 가해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라 대표가 주가조작 세력 내통설을 제기한 김익래 다움키움그룹 회장은 라 대표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금융감독원은 키움증권 검사에 전격 착수했다. 아비규환이다.

    이번 사태로 뜨거운 감자가 된 차액결제거래(CFD)는 투자자가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산 시점과 판 시점의 차액만을 결제하는 장외파생계약이다. 증거금으로 거래 금액의 일부만 내고, 판 시점에 손익만 정산한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에 투자를 촉진하겠다며 CFD 요건인 전문투자자 자격을 완화했다. 증권업계도 이에 화답하며 관련 영업을 확대했다.

    금감원이 발간한 '2022년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CFD 거래가 허용된 개인전문투자자는 2020년말 1만1626명에서 2021년말 2만4365명으로 1년 새 2배가량 늘었다. 거래대금 중 개인전문투자자가 전체의 97.8%를 차지, 개인 투자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2021년 CFD 거래 규모는 70조1000억원으로 2020년(30조9000억원) 대비 2.3배로 증가했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CFD 시장 과열 우려가 있고, 주가 변동성 확대시 CFD 거래의 레버리지 효과 등으로 투자자자 손실 발생 소지가 있다"며 "개인전문투자자 등록은 증가했으나 전문투자자 전환에 따른 영향 등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 피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가 변동성이 커지게 되면 결국 레버리지 효과로 투자자 손실 폭은 일반 주식투자보다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국은 문제가 커져서야 증권사 CEO들을 모아 관리에 나서는 등 뒷북을 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또 주목할 부분이 있다. 소위 돈 좀 만진다는 이들이 꽤나 많고 이들의 보여준 재테크 방식의 '민낯'이다.

    한창 강남 아파트로 쏠리던 돈들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론 주식 시장을 달궜다. 시장 관계자들도 "이렇게 시중에 유동성이 많은지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로 부동산 시장 거품이 빠지고,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로 주식 시장이 냉각되면서 이 '돈'들이 어디에 있나 싶었는데 이런 곳에 '숨어'있었다.

    CFD는 아무나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이 계좌를 개설하려면 과거에는 금융투자상품 잔고가 5억원 이상이어야 했다. 이걸 2019년에 5000만원 이상으로 낮췄다. 이외에도 ▲연 소득 1억원 이상(혹은 부부합산 1억5000만원) ▲순자산 5억원 이상 ▲전문가 자격증 혹은 합격증을 보유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실제로 CFD 계좌 개설을 위한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의 경우 전문가 자격요건보다는 소득이나 자산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에 대한 진입장벽도 높기 때문에 말 그대로 돈 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투자다.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계좌를 만드는 사람들의 조건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누구의 돈인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게, 사실상 '폰지 사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하게 숨어있는 돈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미 알려졌듯 이번 사태엔 가수 임창정 씨부터 비롯해 연예인, 의사 등 전문직, 유명 기업 회장님들도 연루됐다. 기업인이나 연예인, 의사 등 자산가 1000명 정도가 일인당 1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까지 투자했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투자 과정은 이렇다. 믿을만한 누군가의 추천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맡기고, 억 단위의 돈을 송금을 한다. 그런데도 어디에 투자하는지도 모르고 투자금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떻게 이뤄졌을까.

    많은 자산가들이 여전히 두자릿수 수익률에 취해있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느끼는 직간접적인 우월감이 깔려 있다.

    코로나 기간에 주변에서 주식으로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백% 수익률을 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이른바 '야수의 심장'을 가진 투자자들은 그 맛에 중독이 됐다. 글로벌 경기 불안정으로 시장의 금리가 오르고 주가가 꺾이면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그리워할 정도다.

    한 금융사 프라이빗뱅커는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한 때 경험해봤던 두자릿수 수익률이 영원할 것이라고 여전히 착각을 하고 있는데 공식적인 투자 방식으로는 이를 충족하기가 어려워진 환경이 됐다"며 "이번 사태에서 보듯 사회적으로 신뢰할만한 영향력, 직업,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투자 추천을 하고, 투자 후 당장 그 수익률을 맛보게 되면 이를 경험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와 네트워크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혹자들은 기준금리가 이전보다 크게 올라가긴 했지만, 실질 금리는 여전히 낮다보니 이런 투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하기도 한다.

    '은밀한' 투자라는 점도 그들에겐 매력적이다. CFD는 투자 주체가 드러나지 않고, 증권사 명의로 거래가 된다는 점에서 불공정 거래에 악용될 소지도 크다는 지적들이 있어 왔다.

    CFD 관련 투자 제의를 받은 전문직 종사자는 "이 투자에 관심을 보일 법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세금'에 민감한 사람들이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소득에 과대한 세금이 매겨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직들과 연예인들, 상속세 이슈가 상존하는 재벌가나 자산가들 얘기"라며 "공개적으로는 자신들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알리고 싶지 않지만, 또 그들 사이에선 자랑하고픈 이중적 작태를 잘 이용한 사기"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이번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서 그렇지, 그 아래엔 이런 식의 투자가 여전히 성행할 가능성이 크다. 고위층 재테크의 민낯이 드러났으면서도 이또한 일부라는 얘기다. 어쨌든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기'로 돈을 잃었으니 당분간 백화점 명품관이 좀 한산해 지지 않을까"라는 웃지 못할 농담을 나오게 하는 그들이 보여준 작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