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 손실도 국가가 배상해야할까...흔들리는 '자기책임 원칙'
입력 23.05.09 07:00
Invest Column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100% 환불배상이 '표준'돼
SG증권발 주가 급락 사태도 '정부 감독 책임' 물을 가능성
2019년 이후 금융회사 팔 비틀려 100% 배상 조정 잇따라
전세사기 이슈까지 여파...'자기책임 원칙' 명문화 목소리
  •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100% 환불ㆍ배상'이라는 전례가 마련된 탓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잣대를 들이대는 게 무의미할 지경이라는 탄식도 들린다. 파생결합펀드(DLF)ㆍ라임펀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내린 정치적 판단이 금융시장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이슈가 된 SG증권발(發) 주가 급락ㆍ차액결제거래(CFD) 사태와 관련, 피해자들은 한 중견 로펌을 중심으로 손해배상을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소송 대상은 일단 사태의 장본인인 투자자문업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들이 최종적으로는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전을 확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당 투자자문업체 역시 대규모 손실을 본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만족할만한 구제를 받으려면 결국 금융당국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논리다. 불법행위를 자행한 유사 투자자문업체 및 고위험 CFD 상품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명분'도 있다.

    이런 예상의 바탕에선 망가져 버린 '자기책임 원칙'에 대한 씁쓸함이 읽힌다. '금융사고 발생시 피해자 100% 구제'가 어느새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것이다.

    '자기책임 원칙'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원리다. 금융상품을 거래할 때 금융 소비자 역시 거래의 주체이며, 계약의 체결과 이행, 그 결과에 따른 최종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법에서 금지하는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면, 이득이든 손실이든 본인이 진다.

    이 원칙이 뒤틀리기 시작한 건 2013년의 일이다.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가 사회 이슈화하며 피해자 구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부도 직전의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팔았던 옛 동양증권은 피해액의 23%, 파이시티 특정금전신탁을 팔았던 우리은행은 40%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중소기업 상당수가 피해를 입은 키코(KIKO) 사태 배상비율도 최대 40%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기존의 판례와 최소한의 자기책임 원칙을 존중했다. 배상비율이 50%를 넘는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2019년부터 본격화한 파생결합펀드(DLF)ㆍ라임펀드 사태였다. 이전 정부의 금융당국은 이 사태를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손보기 위한 카드로 활용했다. 분쟁조정위원회에서 100%에 가까운 배상 결정이 내려졌고, 금융당국은 관리 감독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자(CEO)를 줄줄히 문책했다.

    '피해자는 선량한 시민'이라는 프레임이 공고화했다. 이후 독일 헤리티지펀드 등 다른 상품에서도 피해액의 100%를 보장하는 조정 결정이 나왔다.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역시 피해자들은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금융회사 CEO의 관리감독 책임을 적극적으로 물으며 이에 동조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모든 선량한 소비자는 피해 발생시 원금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일종의 자연법으로 실정법 위에 자리잡으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SG사태 피해자들 역시 정부에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원금보장을 요구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자기책임 원칙을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양 CP 사태와 홍콩 파생결합증권(ELS) 사태가 지나간 직후인 2016년,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관련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하는 일련의 정책을 내놨다. 이런 노력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스스로 손바닥을 엎은 꼴이 됐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자기책임 원칙이 더 와해되기 전에 제대로 명문화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자기책임 원칙은 법의 기본 구성 원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행법에 명문화돼있지 않다. 자본시장법에서는 하위 규정인 금융투자업 규정에 단 한 줄로 다뤄져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며 자기책임 원칙 역시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 해석과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것에는 책임이 없다'는 소극적 해석이 대립하고 있는만큼, 좀 더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피해자가 배상을 받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금융회사가 피해 배상을 하고 나면 그 여파는 다른 소비자를 거쳐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게 된다. 금리든, 상품 조건이든, 주주 배당이든 다른 지출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회사가 납부하는 법인세도 줄어든다. 피해가 사회화되는 구조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민법에도 자기책임 원칙에 해당하는 사적자치의 원칙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세계약 역시 이 원칙에 해당한다"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임대차보호법을 넘어 국가 책임을 주장하며 피해액 전액보장을 요구하는 데엔 2019년 이후 반복된 '100% 배상' 사례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