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동 CJ공장부지, '제2의 레고랜드' 될 운명 떨쳐낼까
입력 23.05.19 07:00
취재노트
  • 가양동 CJ공장부지 개발사업은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인근 11만2587㎡에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1.7배 크기의 업무·상업·지식산업센터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총 사업비만 약 4조원 규모다. 시행사는 인창개발, 시공사는 현대건설이다. 당초 땅의 소유자였던 CJ제일제당이 공동주택으로 개발하려 했지만 자금난으로 2019년 인창개발-현대건설 컨소시엄에 1조500억원에 매각했다.

    지난해 9월 강서구청의 관보를 통해 건축협정인가 공고가 났는데, 강서구청이 지난 2월 이를 돌연 취소하면서 건축허가절차가 중단됐다. 소방시설 등 관련기관(부서) 협의를 이유로 들었다. 시행사 인창개발은 지난달 24일 서울행정법원에 강서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인창개발은 인가 취소 처분에 실체적·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절차법은 행정청이 처분을 내리기 전에 사전통지 또는 의견 청취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강서구청은 이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강서구청은 소방기관 협의 내용 외에 담당 사무관의 전결 처리를 협정인가 취소 사유로 내세우고 있다. 허가권자인 구청장(지난해 7월 취임) 등에게 보고 또는 어떠한 회의도 없이 담당 사무관이 전결 처리, 심도 있는 안전 검토가 없었다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건 취소로 시행사가 감내하는 손해는 한 달에 70억원 수준이라고 한다. 증권회사들이 주관한 11개 특수목적법인(SPC)의 CJ공장부지 개발사업 PF 조달금액은 1조3550억원에 달한다. 이중 3700억원의 만기가 이달 24일 도래한다. 브릿지론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새로 발행해 차환할 계획인데 NH투자증권(1200억원), KB증권(1000억원), 한국투자증권(1000억원) 등이 주관한다. 나머지 9000억원가량은 오는 하반기부터 만기가 돌아온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채무 인수를 약정했다.

    가뜩이나 부동산금융 시장에서 돈이 제대로 돌지 못하는 와중에 이 사건의 여파가 커지게 되면 해당 사업장에서의 막대한 금융비용 발생은 물론, 시장 전체에 또다른 경색을 야기할 수도 있다. 많이 닮은 듯한 사건이 떠오른다. 지난해 한국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들었던 레고랜드 사태다. 공교롭게도 강원도와 강서구의 지방자치단체장이 같은 당 출신이다.

    시장에선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한다. 강서구청이 애초에 밝힌 취소사유와 공식 입장문에 들어간 내용을 보면 인가취소 배경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구청장에 보고가 안됐다는데 지난해 9월 건축협정 인가를 위해 강서구 건축위 심의가 열렸고, 이후 강서구청장 직인이 찍힌 건축협정인가 내용이 관보에 게재됐다. 설사 구청장에 보고가 안됐다고 하더라도 이는 구청 내부절차 문제인데 이걸 시행사 잘못으로 돌리고 사업 자체를 취소할 수 있냐는 것. 이에 4조원에 육박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사업이 지자체의 신중하지 못한 판단으로 '올스톱'됐다는 비판이 지속되는 중이다. 

    가양동 CJ부지 개발이 제2의 레고랜드 사태인지 아닌지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원도나 강서구나 이미 약속한 것을 뒤집었으니 피차일반(彼此一般)이라고 하겠다.

    부동산금융업계 관계자는 "담보로서 토지 가격, 시공사와 참여한 금융사들의 수준을 보면 여러모로 사업 안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딜인데 구청장 한 마디에 약속한 딜을 깨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정치적 보상물을 취하려는 지자체장의 약속 뒤집기가 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시장을 흔드는 사례가 계속 나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변수가 발생했다. 김태우 강서구청장이 구청장직을 잃게 됐다. 김 구청장은 7급 검찰수사관으로 청와대 특감반 파견 근무 중이던 2018년 12월부터 2019년 2월 공무상 알게 된 비밀을 언론 등에 폭로한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18일 김 구청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형사 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직을 상실한다.

    이에 대규모 개발사업이 재개되지 않을까 기대감이 일찌감치 솟아오르고 있다. 개발 당사자는 물론 개발 소식을 기다리는 일대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법조계에서는 민사소송의 가처분 절차에 해당하는 행정소송의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건축협정 인가를 취소한 강서구청의 기존 행정처분이 뒤집어 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일각에선 김 구청장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규보 개발사업에서 추가 기부채납을 얻어내려 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강서구청이 해당 사업에 제동을 건 배경으로는 기대치에 못 미쳤던 기부채납 건이 꼽힌다. 당초 서울시와 시행사는 개발이익의 12.3%를 기부채납 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여러모로 정치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