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M&A시장 최대어 HMM, 이번 매각은 이미 '꽝'?
입력 23.05.22 07:00
기업들 인수후보 거론조차 부담, 인수 자문사 선정 소식도 잠잠
높은 몸값·영구채·업황 침체 등 알려진 악재가 장벽
"국내에만 허락된 거래, 굳이 지금 나설 이유 없어"
어렵다 공감 생겨야 인수자에 유리한 구조 나올 듯
  • 올해 최대 M&A로 꼽히는 HMM 매각이 초반 분위기가 조용하다. 그렇다고 이렇다할 수면 아래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다. 

    일단 인수후보가 전혀 없다. 수조원에 달하는 몸값과 꺾이는 업황, 영구채(CB) 등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언론에서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기업들로서는 하반기 경기상황을 감안할때 지금 수조원을 투입한다고 할 경우 주가가 폭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매각 측인 산업은행 등이 거래 성사를 위해 HMM 몸집을 줄이거나 매각 지분율을 줄이는 등 '유두리'를 발휘하는 모습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시작도 하기전부터 이번 매각 시도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매각이 난항을 겪을수록 점점 매각 측이 ‘현실적인 조건’을 마련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8일 M&A 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 등 HMM 매각 주관사단은 매도자 실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매각 구조나 일정에 대한 논의는 다음달 중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밑에서의 HMM 인수 열기는 미지근하다. 투자은행(IB)들은 최대 500억원대 수수료가 걸린 매각 자문사 자리를 두고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떨어진 곳들은 인수자 쪽으로 눈을 돌릴 법한데도 불구, 아직도 적극적인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매각 주관에 도전하지 않았던 곳들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일단 대기업들이 소극적이다. 잠재 후보로 꼽힌 현대차, 포스코, CJ, 현대중공업 등은 인수 의사나 여력이 없다며 일찌감치 손을 내젓고 있다. IB들이 찾아가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조차 싫다며 돌려보내는 분위기다. "떡줄 사람은 있는데 먹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세평이 나온다. 삼성증권이 그룹 차원의 지원 약조(?)를 받고 매각 주관을 따낸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알려진 위험요소들이 거래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매각 대상 지분(40.64%) 가격만 4조원에 가깝다. 여기에 HMM 주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2조6800억원 규모 영구채도 잠재 처분 대상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한 매각 희망 가격이 7조원에 달할 것이란 평가가 있었다. 투자보다 내실 다지기가 급한 기업들이 엄두를 내기 어렵다.

    영구채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기업이 HMM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어도, 영구채 전량이 주식으로 전환되면 다시 산업은행 등의 지분율이 높아진다. HMM은 이제 정상기업이라 산업은행 등이 손해를 감수하거나 양보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주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되 인수자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약정을 맺는 게 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여기까지 논의가 진척되지도 못했다.

  • 업황은 예상대로 하향세다. 컨테이너선사들은 코로나 팬데믹 후 운임과 물동량이 폭발하면서 역사적인 실적을 기록했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실적이 꺾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90% 줄었는데, 이제야 ‘정상화’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수년간은 극적인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IB 관계자는 “당장 존속이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기업이라면 영구채를 적당히 상환받더라도 명분이 있지만 HMM은 배임 부담에 그런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HMM 매각은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서 최대한의 회수 성과를 내는 게 정석이라는 점에서 매도자 쪽에 걸림돌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HMM 매각에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가격을 크게 손대기도 쉽지 않다. 예정가격은 적정한 거래가 형성된 경우 그 실례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상장사 HMM은 시장 가격을 무시할 수 없다. 골드만삭스와 크레디트스위스(CS)가 이런 난제들을 고려해 매각 자문 경쟁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결과를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만일 매각이 무산된다면 HMM의 몸값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과 꺾이는 실적이 주가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대신 적당한 가격에 상환해서 불확실성을 줄이는 등 ‘정석’에서 벗어난 방식을 매도자가 검토할 여지도 많아진다.

    대기업 역시 지금 HMM을 볼 이유는 없다. 큰 돈을 들여도 덕을 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HMM이 필요하더라도 지금처럼 변수가 많을 때 경쟁이 붙으면 자금 지출만 더 늘어난다. 반대로 매각이 유찰되고 웬만해선 팔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거래 구조가 기업에 유리하게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대기업 특혜’ 논란에서도 보다 자유로워진다.

    과거 산업은행이 주도한 M&A에서 그런 전례가 많았다. 

    2008년 6조원에 팔려다 실패한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한화그룹에 2조원에 팔았다. 그것도 구주 매각이 아닌 유상증자 방식이다. 그 전엔 현대중공업에 현물출자 방식 매각을 추진했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구주와 신주를 2조5000억원에 사려다 무산됐는데, 이후 대한항공은 산업은행의 지원까지 받으며 아시아나항공 신주 1조5000억원을 인수하기로 했다. KDB생명보험 역시 매번 구주 매각이 무산되자 유상증자 방식까지 허용한 바 있다.

    다른 IB 관계자는 “HMM에 관심이 있는 대기업이라면 과거 산업은행 관련 거래와 마찬가지로 몸값이 낮아지고 조건이 좋아진 뒤에야 움직이려 할 것”이라며 “국내에만 허용된 거래고 지금은 팔기 어렵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늦게까지 상황을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산업적으로 봤을 때도 반드시 이번에 HMM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현대LNG해운, 폴라리스쉬핑, SK해운 탱커선 사업 등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선사들이 매물로 나와 있다. HMM의 현금으로 이들 기업을 사두면 국가 차원에서 해운산업을 관리하기 용이해진다. 실제 HMM은 현대LNG해운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곳도 몸값만 맞다면 인수할 만하다는 분위기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HMM이 번 돈으로 해운사 매물을 거둬들이면 국가 차원에서 해운 정책을 펼치기 수월해진다”며 “지금 통매각을 고집하는 것보다 몇 년간 여러 사업부를 탄탄하게 한 후 두세 덩어리로 쪼개 파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