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침체ㆍ미국 견조' 새 시나리오 반영 시작한 증시
입력 23.05.24 07:00
역외 환율 1달러당 7위안 올해 첫 돌파
미국향(向) 소비주 반도체ㆍ자동차에 순매수세
철강ㆍ화학ㆍ화장품 등 중국주 주가는 연저점
美 부채한도 리스크에도 대형주 위주 외국인 순매수
  • 중국 역외 달러위안화 환율(USD/CNH)이 최근 올해 처음으로 1달러당 7위안을 돌파했다. 지난 3월 이후 약세를 보이던 미국 달러지수(DXY) 역시 위안화 약세에 힘입어 반등을 시작했다. 급변한 환율이 '하반기 중국 침체, 미국 견조'라는 신호를 보내자, 국내 증시 자금도 일제히 이동을 시작했다.

    당분간 철강ㆍ화장품 등 중국향 수출 비중이 높은 소비재는 힘든 시절을 겪을 전망이다. 반면 미국 빅테크가 주 고객인 반도체와 대미(對美)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자동차는 이전의 침체를 만회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연초 이후 외국인 투자자의 코스피 순매수 금액은 22일 11조원을 넘어섰다. 23일 소폭 순매도로 돌아섰지만, 최근 5거래일간 1조7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외국인들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종목에만 9조4000억원을, 현대차와 기아차에는 1조8000억원의 순매수를 집중했다. 연간 순매수 11조원의 거의 전부를 반도체와 자동차, 그 중에서도 대표 4종목에 집중 투자한 것이다.

    외국인의 대형주 집중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23일 2567.55로 거래를 마감하며 연중 최고점인 지난 4월의 2582에 바짝 다가섰다.미국의 부채한도 협상 리스크가 남아있지만, 당장 미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 단계에 이를 거라는 극단적인 전망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조심 오르는 모양새다.

    반면 같은 대형주라도 포스코홀딩스 등 철강주나 LG화학 등 화학주, 아모레퍼시픽ㆍLG생활건강 등 중국향(向) 비중이 높은 소비주는 지난 3~4월 연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특히 화장품 관련주는 일제히 연저점 부근까지 밀린 상태다. 이들 종목은 3월 이후 외국인의 순매도세가 눈에 띄게 컸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 핵심은 결국 '중국 경기'에 대한 신뢰라는 해석이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지난 16일 발표된 중국의 4월 소매판매 및 산업생산 지표가 이 같은 전망을 무너뜨렸다. 중국의 4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18.4% 늘었지만 시장 전망치인 21.0%를 밑돌았고, 산업생산 역시 5.6% 늘어나는 데 그쳐 전망치 10.9%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발표된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폭 역시 국내는 물론,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 대비 크게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2월 마이너스(-) 1.4%에서 3월 -2.5%로 낙폭을 키우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소비 회복세가 더딘 가운데 공장 가동이 줄어들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중국 경기가 생각보다 덜 뜨거울 수 있다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환율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중국이 올해 들어 계속 수출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고 있지만, 소비 침체에 따른 수입 부진이 이어지며 하반기엔 수출 역시 둔화 압력이 커질거라는 게 현재 컨센서스"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경기는 부채한도 협상이라는 정치적 이슈만 제외하고 보면 예상보다 견고하다는 평가다. 

    현지시간 17일 발표된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4% 성장하며 예상치(0.8%)에 미치지 못했지만, 3개월만에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다. 고용시장도 여전히 뜨겁다. 미국 실업율은 3.4%로 50년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6%(전분기 대비, 연율화)로 1분기의 1.1% 대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기간동안 미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정책을 펼쳤고, 이때 쌓인 초과저축이 지금도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지지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가계 초과저축은 2021년말 기준 8조달러(약 1경원) 이상으로 추정됐고, 지난해 초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현 시점에도 여전히 3조달러(약 4000조원) 이상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및 자동차는 미국 경기가 연착륙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큰 수혜를 볼 산업군으로 꼽힌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로 미국 기업인 빅테크가 주요 고객사고, 자동차 역시 지난해 미국향(向) 수출이 2021년 대비 30% 늘어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이투자증권은 22일 "미국 경제가 모멘텀을 받을 때는 미국 수출 소비재인 반도체나 자동차를 좋게 보면 잘 틀리지 않는다"며 "반도체는 중국의 영향도 컸으나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수요처가 IT빅테크 기업으로 바뀌고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미국 경기와 더욱 연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이달들어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가 시총 상위 대형주에 집중되고 있어 코스피 지수가 당분간 약세를 보일 것 같진 않다"며 "반도체의 경우 올해 2분기 업황 저점을 지나 3분기부터는 상승세가 시작될 것이란 게 최근 컨센서스인데, 이 때문에 업황 턴어라운드시 주가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큰 SK하이닉스에도 수급이 실리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