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부동산 대책에 지원금 짜내는 금융사들…PF시장 찬바람은 '여전'
입력 23.05.26 07:07|수정 23.05.26 07:08
반년 새 쏟아진 대책만 수십 여건
全금융기관 참여한 대주단협의체 출범에
PF 디폴트 사라졌지만…
"시공사·시행사·신탁사·금융기관 모두 부담은 그대로"
착시에 가려진 부동산PF 위기는 현재진행형
  •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경색을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반 년새 수 십건 이상 쏟아졌다.

    ▲규제지역의 해제 ▲부동산 규제 완화 ▲공공주택 공급 ▲대출규제 완화 ▲상환 유예 ▲채권시장안정펀드 ▲유동성지원(한국증권금융) ▲기업어음(CP)·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회사채 매입 확대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확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확대 ▲부실 PF 매입 등 부동산 지원 대책과 금융사 및 금융사 및 펀드를 활용한 금융 지원 정책도 지속적으로 제시됐다. 정부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상당한 권한을 위임하면서 PF시장에 대한 지원이 중첩했고 또 확대했다.

    '연명치료의 시작'이라는 논란을 일으켰던 대주단협의체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위후 13년만에 다시 등장했다. 정부가 주도한 대주단협의체에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참여하며 당분간 PF사업장의 부도(디폴트)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 더 이상의 대책이 무의미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쏟아진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그래서 PF 시장의 온기가 돌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사업을 일으킨 시행사의 자금난은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건물을 짓는 건설사들은 10% 이상의 조달 금리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극소수의 몇몇 대형 건설사들은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투자 유치를 받거나, 추가 담보를 제공해 돈을 빌리고 있는데 사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건설사들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부동산 대출 연장을 거부하고, 회수에 나섰을 금융기관들은 대부분 대주단협의체에 묶이며 사실상 자의적으로 부동산 대출 및 회수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 가지 유의미한 효과라고 하다면 국내의 대규모 PF사업장이 아직 문을 닫았단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이 잘 돌고 있다는 착시 속에 7만호를 넘어선 미분양 주택, 그리고 건설중인 주택의 분양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건설사들의 사정이 묻혔다.

    현재로선 정부가 쏟아낸 부동산 대책이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엔 어렵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확정되지 않은 손실을 뒤로 미루고 부동산 시장의 상승기를 기다리는 수준을 뛰어넘는 대책은 아직도 제시되지 못했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 개입으로 부동산금융과 관련된 리스크는 더욱 복잡해지고 변동성은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부동산 가격의 충분한 하락, 금융기관의 빠른 손실 인식을 통해 조기에 투자심리 안정화를 유도하고, 금융기관의 신용위험 변동성을 축소시켜야 하지만 정부 지원책은 부동산금융과 금융기관의 손실을 이연하고 이익을 보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부동산 리스크 관리를 가장 철저히 한 곳은 바로 시중은행들이었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거치면서 은행들은 부동산 대출 심사를 강화해 왔는데, 지난해까지 부동산·PF 대출의 상승폭이 전 금융업종을 통틀어 은행이 가장 낮았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타금융업종과 대주단협의체에 함께 묶였고, 사업장이 공동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부실을 함께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 금융업종을 대주단협의체로 한 데 묶으면서 사실상 대주단협의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있다. 당장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실화가 진행했거나 손실이 확정적인 사업장에 대해선 대주단협의체로서도 만기 연장 합의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분양률이 원금을 건질 수 없는 수준에 머무르는 지방의 주택, 상업시설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는데 상황이 더 악화하면 정부의 대주단협의체를 통한 ‘PF 연명 작전’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평가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금융그룹들은 PF 관련 지원금을 출연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부채담보부증권(CDO)를 발행해 PF시장에 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공급하기로 했고, 신한은행도 신규자금 지원 및 브릿지론의 만기연장 등에 5500억원을 지원한다.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블라인드 부동산PF 펀드를 만들어 역시 5000억원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정책에 힘을 싣기 위한 자금 지원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금융그룹들의 부동산PF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자의적인 경영판단으로 해석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 금융당국의 압박은 은행 및 금융기관의 상당한 부담이 된다. 끊임없는 PF위기설에도 불구하고 채무불이행(EOD)을 선언한 금융기관이 없다는 점은 현재 PF시장의 헤게모니를 정부가 강하게 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레고랜드 사태의 발발 이후, 금융당국은 ABCP 매입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를 주 단위로 점검해 왔다.

    실제로 한 외국계 A금융기관은 EOD를 선언해야 하는 사업장이 있었지만 결국엔 만기 연장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당국에서 ABCP 발행을 요구했지만, A기관이 끝까지 반대하자 수 주에 걸친 감사에 돌입했다. 결국엔 만기 연장으로 결론을 냈지만 현재는 금융기관들 사이에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직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수위가 낮아질 것으로 예단하기 어렵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부동산 PF 대출 가운데 추정손실을 대손상각처리할 것을 주문했는데 일부 금융기관들의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는 평가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부동산 시장 연착륙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해 달라"고 주문했다. 어느덧 이번 정부의 가장 큰 국정 과제가 돼버린 부동산 연착륙이란 대전제를 달성하기 위해 또 어떤 대책이 제시될지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