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필요한 금감원에 숨죽인 증권사들…채권 미스매치 빌미될까
입력 23.06.09 07:00
취재노트
금감원, 불법 외화송금ㆍ부동산PF 조사 끝맺음 부족
입지 흔들릴까 조직 개편 및 금융권 전방위 압박 강화
금융사 긴장감 고조…수차례 내부 컴플라이언스 확인
증권사 '채권 돌려막기'로 칼끝 닿나…업계 예의주시
  • "금융 당국이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지금은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정무위 관계자

    최근 금융감독원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이복현 원장이 취임한 이래 국내 은행 불법 외화송금 사건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수조사ㆍSG증권발(發) 주가조작 의혹 등 굵직한 사건들을 다뤘지만, 제대로 된 결론에 이른 적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금융위원회와 국회 정무위원회 등 정치권 일각에서 금감원의 입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감원은 약 10년 만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조직 확대를 통해 금융권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확실한 제재 사례를 도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금감원의 이 같은 광폭 행보에 제재 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하는 금융 회사들은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달 금감원이 발표한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주가조작을 포함해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부문의 인력이 약 35% 증원되고, 특별조사팀ㆍ정보수집전담반ㆍ디지털조사대응반 등이 신설된다. 특히 이번 개편에는 '시장교란 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인 이복현 금감원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주가조작 의혹 사태를 겨냥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선 이번 조직 개편이 결국 금융 회사들을 향한 전방위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특별조사팀은 차액결제거래(CFD) 전수조사를 시작으로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는 모든 불공정거래 사건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일종의 '금융권 모니터링 TF팀'을 꾸려 총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금융투자 업계에선 금감원의 행보에 조급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16조원대 은행 불법외화송금 사건'과 '부동산PF 부실 사업장'에 대한 고강도 조사로 존재감을 키웠지만, 현재 두 사건 모두 업계 반대에 부딪혀 제재 수위를 확정하지 못했거나 전수조사 내역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ㆍ신한은행 등 12개 은행과 NH선물 등 총 13개 금융사에서 한화 약 16조원 규모의 불법 송금 정황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금감원은 일부 은행의 영업 정지와 임직원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지만, 각종 은행들이 소명을 이어가면서 최종 결론은 지연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난해 은행 불법 외화송금 수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금융권 압박 수위를 높이려 했지만, 해가 바뀌도록 제재 수위를 확정하지 못하는 등 가시적 성과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며 "특히 취임 1주년을 맞은 이 원장도 내세울 만한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라, 당국의 모든 행보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른 금융권의 '금감원 눈치보기' 강도 역시 더해지고 있다. 성과가 필요한 금감원에 괜한 빌미를 제공해 역풍을 맞을 까봐 우려하는 금융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증권사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KB증권으로부터 불거진 '채권 미스매치'(만기 불일치 운용) 사태다. 성과가 시급한 금감원이 시선을 돌려 이에 집중할까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검사 결론이 '시장 왜곡'으로 판단될 경우 당국의 수위 높은 제재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달부터 금감원이 하나증권과 KB증권의 채권 거래 현황을 검사하기 시작한 것도 불안 수위를 높이는 요소다. 금감원은 대형 증권사를 기점으로 중소형 증권사까지 검사 대상을 확대할 전망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 대형사 중에서도 KB는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비중이 적은 편인데 의아했다"며 "업계에선 KB증권을 두고 '타이밍이 나빴다'는 동정론도 있지만 일단 금감원 조사가 들어오면 다른 증권사들도 위험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채권 만기 불일치 운용은 모든 금융 회사가 하는 일인데,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부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부서와 소통하며 추가적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 보고 있다"고 거들었다. 

    금융권에선 금감원의 칼날이 채권 운용 부문 전체로 확대될 것을 염려하는 분위기다. CFD 사태처럼 직접적 제재는 없더라도, CFD 한도를 줄이거나 전문 투자자 요건을 상향하는 등 규제 강화로 이어지면 수익성에 대한 검토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 만기 불일치 운용을 주 업무로 삼는 퇴직연금 관련 부서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1년짜리 상품에 약 6%의 높은 확정금리를 제시해 왔다. 이 과정에서 단기 상품 자금을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 미스매치 전략을 확대해 왔지만, 최근 고금리 구조에서 평가손실이 커진 탓에 당국의 '규제 레이더'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졌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은 "재작년부터 퇴직연금 금리를 1%라도 더 제시해 고객들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이때 3~5년짜리 장기 채권을 편입하면서 평가손실도 큰 상황"이라며 "문제가 됐던 신탁 계좌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법적 이슈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당국이 손실 자체를 문제 삼으면 끝도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