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우려는커녕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은행 제도개선 TF
입력 23.06.12 07:00
취재노트
은행 "과점 깨라"로 출항해 시간 지날수록 존재감 미미
엉뚱한 명분 내세워 예견된 용두사미 평…취지도 무색
이룬 건 지주회장 교체?…'총선용' 인식 갈수록 짙어져
정부가 은행 중요성 입증한 꼴…제도개선 명분만 소진
  • 은행 독과점을 문제 삼아 요란스레 출범한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가 갈수록 존재감을 잃고 있다. 용두사미란 관전평과 함께 '그럴 줄 알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명분 자체도 무리였지만 다루겠다는 사안마다 무게감이 커 취지가 무색해진 건 물론, 차라리 빈손 결론이 낫겠다는 분위기마저 전해진다. 

    은행 제도개선 TF는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공공재 발언 및 독과점 폐해 지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시장에선 인식하고 있다. 고금리에 국민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닌데 5대 은행은 정부 라이선스 덕에 편하게 이자장사에 성과급 잔치를 벌이다 개혁 대상으로 찍혔다는 식이다.

    은행권 개혁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는 측도 TF 활동이나 성과에 대해선 회의적 전망을 주로 내놨다. 개혁 명분을 엉뚱하게 설정하면서, 취지가 왜곡된 채 TF가 꾸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국책 연구기관 소속 한 인사는 "TF에 참여한 실무진에서부터 소란만 피우다가 빈손으로 마무리될 거란 목소리가 많았다"며 "은행권 경영이나 업태를 손볼 필요가 있다 해도 '독과점', '공공재'라던가 '주인 없는 기업이라 문제'라는 식으로 억지 명분을 내세운 시점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고 결국 TF 안팎에서도 총선용 이벤트라는 인식이 많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자 정부가 내건 '5대은행 독과점 폐해' 명분이 붕 떠버렸다. 이들 은행을 견제하겠다며 제시한 특화은행, 스몰라이선스, 추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등 대안도 줄줄이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TF 내에서도 SVB가 파산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는 우스개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TF 소속 한 인사는 "관가에서 SVB는 정부의 충청권 새 지방은행 설립 공약부터 TF의 5대 은행 견제 전반을 꿰뚫는 상징으로 통했는데, 특정 차주에 집중한 SVB 모델이 금리 인상기 기본적인 운용 실패로 문을 닫게 된 것"이라며 "국내 대형은행의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탄탄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독과점을 깨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흔들리니 TF를 지속하기도 무색해졌다"라고 말했다. 

    TF의 명분이 희석될수록 내년 선거를 겨냥해 급하게 꾸린 조직이란 안팎의 시선은 더 강해졌다. 대통령이 '과점을 깨라'고 주문하기 두 달 전만 해도 금융위 산하 자문기구가 국내 은행업 시장 집중도가 완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애당초 정부당국이 TF를 출범시킨 속내가 다른 데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의 은행업에 대한 진단이 뒤집히는 동안 벌어진 일도 이런 시선을 뒷받침한다. 이 기간 은행지주 두 곳의 수장이 교체됐고 대전시는 한국형 SVB 설립을 추진하고 TF에선 제4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질적인 변화를 겪은 은행지주는 현재 정부를 대신해 부실이 예상되는 시장마다 곳간을 열고 있다. 반면 나머지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종적을 감췄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TF에 은행권을 견제할 수 있는 대형 아이디어가 빼곡히 담겼는데, 인프라 전반을 뜯어고치는 내용임에도 활동기한은 4개월 남짓으로 설정했다"며 "SVB 파산으로 사안별 무게감을 뒤늦게 체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애당초 은행권 팔 비틀기가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셈이라 자연스럽게 TF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단 분석도 들어맞는다"라고 전했다. 

    현재 금융권에선 이달 말 TF가 내놓을 개선 방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 우려도 기대도 전해지지 않는다. 챌린저뱅크나 전자금융거래법, 종합지급결제 등 핵심 사안의 규모를 고려하면 유의미한 결론을 내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실제로 TF 활동도 1~2주에 한 번씩 모여 업권별 입장을 순차로 낭독하는 데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상대로 용두사미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게 차라리 다행일 거란 반응마저 나올 지경이다. 금융권 내 기존 메기들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급하게 파이를 쪼개거나 신규 사업자를 들이미는 식으로 대형은행을 견제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다. 

    다만 TF가 빈손 성과를 낼 경우 제도 선진화 명분 자체가 상실될 거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은행지주 등 지배적 사업자 입장에선 정부당국이 대신해서 존재 가치를 드러내준 상황이기도 한 탓이다. 

    당국 출신 한 관계자는 "한국형 SVB와 같은 특화은행이나 종합지급결제업 등은 은행 견제 목적을 떠나 도입 필요성이 큰 정책들인데 TF가 일시에 명분을 소진해버린 모양새"라며 "마치 은행권 견제 도구처럼 각인된 탓에 은행지주들이 '그것 봐라, 우리 없이 되겠느냐'라는 식으로 이해관계를 더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게 돼버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