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지나 '쪽박' 찰 물류센터 시장, 플레이어간 '제로섬 게임' 시작
입력 23.06.21 07:00
공급 과잉에 임차인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
늘어나는 공실률에 참여자들 갈등 골 깊어져
"내 손실 보전 위해서는 상대의 희생 불가피"
  • "물류센터 PF 시장은 끝났다. 이젠 아무도 믿지 못한다" (증권사 PF 담당자)

    물류센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참여자들의 '폭탄 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손실이 불 보듯 뻔하니 선매입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운용사, 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행사·대주단 등 시장 참여자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당분간 물류센터는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을 거란 전망이다.

    최근 마스턴투자운용이 조성·선매입한 물류센터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마스턴투자운용은 인천 항동에 위치한 저온 물류센터 잔금 납입을 미뤄오다 최근 최종 매입을 거부했다. 현재 계약금 반환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안성 일죽 저온 물류센터에도 최근 매입확약 미이행 통지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사·대주단 등 매도자는 마스턴투자운용이 손실을 피하려고 거래를 중단하는데, 책임을 매도자에 떠넘기기 위해 빌미를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마스턴투자운용은 매도자 측에서 매매확약 조건을 지키지 않아 거래가 무산됐다는 설명이다.

  • 물류센터 잡음은 마스턴투자운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물류센터 시장은 PF 참여자의 '폭탄 돌리기'가 진행중이다. 공급 과잉에 제값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9년 신선식품 배송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코로나가 더해지며 저온 물류센터 개발 열풍이 일었다. 일반적으로 물류센터를 개발하고 공급하기까지 3년이 걸린다. 3년이 지난 지금, 본격적으로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종합 부동산서비스 기업 젠스타메이트는 따르면 올해 상반기 물류센터 공급 예정면적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1분기 전국 물류센터 신규 공급면적은 약 165만m²(50만평)로 전년 동기 대비 86.6% 증가해 2개 분기 연속 약 165만m²를 넘는 공급이 발생했다. 특히 전국 신규 공급면적의 89%인 약 149만m²가 수도권에 공급돼 물류센터의 수도권 집중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엔데믹이 찾아오자 임차인의 수요가 크게 줄어 저온 물류창고 가치가 하락했다. 공급이 넘쳐나는데 가운데, 개발원가(금리·토지비·공사비 등)는 높아졌다. 일부 저온 물류센터는 임차인을 구하기 힘드니 상온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저온 물류센터는 일반적으로 상온 물류창고보다 건축비가 20% 비싸다.

    실제로 한 부동산 펀드 특화 운용사는 최근 준공된 물류센터의 공실률이 90% 이상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착공 사업장은 공실률 기준에 포함되지 않으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운용사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날리더라도 미리 발 빼 더 큰 손해를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손실이 불 보듯 뻔한데 굳이 인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운용사는 계약금과 중도금마저 되돌려 받으려 선매입 계약 해지 요건을 '샅샅이' 찾고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오아시스와 마켓컬리가 상장을 철회할 만큼 저온 물류센터 상황은 좋지 않다. 매각하지도 못하고 임차인도 못 구할 거면 잔금까지 넣어서 물류센터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며 "울산 사업장에서 본PF에 불참해 시공권을 포기한 대우건설처럼 적정 시기에 발을 빼는 게 현명하다"고 밝혔다.

    운용사가 손실을 '회피'하게 될 경우 그 손실은 다른 플레이어에게 넘어간다. 운용사의 선매입 확약을 믿고 들어온 대주단, 시행사, 시공사 등이다. 

    특히, 시행사·대주단 등 매도자의 타격이 크다. 운용사가 용도제한계좌(에스크로)에 넣어놓은 계약금을 몰취하더라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에스크로에 전체 금액의 10% 정도를 계약금으로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매도자가 '독박'을 차지 않을 방법은 '준공 후 담보대출'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물류센터의 '폭락'에 담보대출비율(LTV)가 감정가의 50% 가량을 겨우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공사는 이후 차주인 시행사에 미수공사비를 후청구한다. 

    한 증권사 PF 담당자는 "마땅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으로 돌아선 상황이다"며 "평판을 지키는 것보다 생존이 더 중요할 만큼 물류센터는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는 시장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손실을 떠안게 된 매도자의 날선 반응도 나온다. 한 거래 관계자는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진 거래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며 "일련의 사태로 일부 대주는 물류센터 투자 제안서 접수조차 받지 않고 있다. 언제라도 등 돌릴 운용사로 낙인 찍히면 신뢰도가 떨어져 추후 거래하기 힘들어질 것"이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