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연준 신뢰 속 FOMO 시달리는 투자자들...하반기엔 '돌다리도 두드려서'
입력 23.06.22 07:00
'6월 동결ㆍ매파적 메시지' 이미 2주 전에 '들통'
예상치 못한 상고(上高)에 투자자들 '포모' 재시작
막상 증시는 당분간 조정...고점 신호도 여러곳서
교차하는 낙관-비관..."대세 상승보단 종목장세"
  • "향후 네 번 회의에서 중 두 번 회의에서 금리를 더 올릴거면, 이번에 하나, 다음에 하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만장일치 동결이었습니다. 이번 동결이 속도 조절임을 보이겠다는 의도적인 점도표 상향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 두 번 인상은 쉽지 않을 겁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전략 담당 연구원)

    지난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동결키로 했다. 지난해 3월 금리 인상을 시작한 이후 15개월만의 첫 동결이었다. '긴축이 끝났다'는 시장의 오해를 경계한 듯 향후 두 차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는 등 다분히 매파적인 메시지를 내놨지만, 시장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FOMC 이후 다우지수는 연중 최고점을 경신했고,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공식적으로 강세장에 진입(저점 대비 20% 이상 상승) 했다. 코스피 역시 연중 최고점을 넘어서며 지난해 6월 이후 1년만에 2600선을 넘어섰다. 올해 연초만 해도 소수의견에 불과했던 '상고'(上高;상반기 증시 호황)가 현실화하는 순간이었다.

    복수의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상승장의 배경으로 '신뢰 잃은 연준'을 지목한다.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는 연준의 의지는 올해 들어 상당한 의심을 받아왔다. 기준금리만 급격히 올렸을 뿐 유동성 회수 속도는 더뎠고, 'SVB 사태' 이후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급히 유동성을 다시 풀기도 했다. 

    '6월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메시지는 매파적으로 내놓을 것이다'라는 연준의 패는 이미 2주 전부터 들통나다시피 한 상태였다. 긴축이 지속될 거라는 믿음이 사라진 상태에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0%로 내려오며 3% 진입을 코 앞에 뒀고, 시중 유동성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였다. 증시가 밀어 올려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을거란 평가다.

    이는 투자자들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승장에서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고통이 다시 엄습해온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상반기의 경기침체(리세션)와 주가하락을 염두에 뒀던 투자자들 입장에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들은 미수ㆍ신용거래를 늘리며 주식 매수 행렬에 나서고 있고, 주식 비중을 낮춰놨던 운용역들도 최근 들어 갑자기 펀드에 비중을 허겁지겁 늘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개인투자자들의 심리지표인 불-베어 스프레드(Bull-Bear Spread)는 15일 현재 플러스(+) 22.5bp로 2021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지표가 플러스면 낙관론 강세를, 마이너스면 비관론 강세를 뜻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6월 들어 국내 증시 하루 평균 거래 대금 규모는 19조6900억여원으로 전달 대비 9%, 1월 대비 30% 가까이 늘었다. 대표적인 증시 주변자금으로 꼽히는 증권사 예탁금도 한 달 새 6조원 늘어나 5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같은 기간 7000억원 넘게 늘어나 19조원을 다시 돌파했다.

  • 그러나 2600선 돌파 후 곧바로 3000까지 질주할 줄 알았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12일 장중 2650선을 잠시 돌파한 후, 일주일 넘게 조정 국면을 거치고 있다. 이번 상승장에서 FOMO 심리를 자극한 핵심으로 꼽히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는 5월말 급등 후 한 달 가까이 횡보 중이다.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보니, 특히 국내 증시를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 간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낙관론의 핵심 축은 기업 이익 회복이다. 5월 이후 2024년 연간 코스피 예상 순이익 컨센서스는 10% 이상 상향 조정돼 199조원에 이른다. 역대 최대 기록인 2021년의 159조원 대비 20% 이상 더 많은 이익을 거둘 거란 얘기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 역시 같은 논리로 최근 연말 코스피 목표치를 2800에서 2900으로 상향 조정했다. 코스피의 30%를 차지하는 정보기술(IT)부문의 이익 성장이 현재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13배가 넘는 밸류에이션 부담을 줄여줄 거라는 논리에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잦아드는 분위기다. KB증권은 현재 우려를 낳고 있는 미국 핵심 CPI(core CPI)가 가을 이후 빠르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5월 미국 핵심 CPI는 전년비 +5.5%로 전체 CPI(headline CPI, +4.0%)보다 높았다. 그 배경은 주거비로, 주거비를 제외한 핵심 CPI의 5월 수치는 +3.9%에 그쳤다. 주거비가 하반기부터 급격히 떨어질 예정인만큼 핵심 CPI 역시 이른 시일 내에 3%대에 진입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국내는 물론, 미국 증시의 상승이 인공지능(AI) 열풍을 등에 업고 IT부문의 극소수 종목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이 주로 지목된다. 현재 미국 증시 전체 시가총액에서 상위 10개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달한다. 이는 닷컴버블때의 20.3% 대비 크게 높은 수준이다. AI 관련 7종목을 제외한 S&P500지수의 올해 수익률은 강보합선에 그친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국내 증시 역시 반도체주와 이차전지주 등 일부를 제외하면 연초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에 머무는 섹터가 많다"며 "소수 주도주만 오르는 시장이 장기 강세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며 보통 종목별ㆍ산업군별 순환매가 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복수의 하우스들이 하반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2024년 코스피 순이익 전망을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하향 조정돼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며, 기조효과가 사라지며 인플레이션 하락세 역시 둔화될 거란 전망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역시 국내 소비자 물가가 올 가을 2%대에 일시적으로 진입한 뒤, 3%대로 돌아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른 운용사 운용역은 "최근 미국은 물론 영국, 국내 채권시장은 '하반기 금리인하' 전망을 철회하고 '하이어 포 롱거'(higher for longer; 높은 금리가 당분간 지속)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사실상 무시하다시피 했던 시중금리가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상승세를 띄게 되면, 하반기 증시가 상반기만큼 좋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