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어려운 SK이노 기습 증자 발표…SK㈜ 입 바라보는 주주들
입력 23.06.29 07:00
조달 마친 SK온 가치 반영 기대감 재차 '하락세'로
CJ그룹 대비 구색 갖췄지만…"왜, 지금?" 아쉬움 多
SK㈜ 입장 변화도 관심…그간 '각자도생'과 대비 평
SK㈜ 참여 여부 주목…SK이노 "주주 피해 최소화 고심"
  • SK이노베이션이 조 단위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모처럼 힘을 받던 주가가 재차 바닥을 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신사업 투자 재원 확보 목적이라 설명하지만 시장에선 시점과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회사 SK온이 필요 투자금을 모두 마련한 참에 그간 한발 물러서 있던 SK㈜의 지원까지 필요한 조달 선택지를 '왜, 지금' 꺼내들었느냔 얘기다. 

    CJ그룹의 대규모 유상증자로 시장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보니 투자가들은 일단 대주주 SK㈜의 참여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SK㈜가 지배력을 유지하자면 4000억원 이상 참여가 필요하다. SK이노베이션 주가 재평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만큼 대주주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거란 목소리가 높다.

  • 27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전일 6% 이상 하락한 데 이어 2.45% 추가 하락해 16만7300원에 마감했다. 지난 23일 오후 1조1777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데 따른 여파로 풀이된다. SK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작업 마무리로 마련된 배터리 가치 반영 기대감이 흐려진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주당 14만3800원에 신주 819만주(증자비율 8.7%)를 발행해 채무 상환 및 지분투자, 시설투자에 쓸 예정이라 밝혔다. 기존 발행주식 수 대비 신주 발행 비중이 그리 높지 않고 70% 이상이 신사업 확대에 쓰인다. 최근 논란이 된 CJ CGV의 유상증자와 단순 비교는 어렵고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는 구색은 갖췄다는 평이 많다. 

    그러나 왜 지금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CJ그룹뿐 아니라 대기업 주력 계열사 사이에서 유상증자 카드를 두고 일종의 눈치게임을 벌이는 분위기인데 SK이노베이션이 지금 유상증자를 추진할 거라곤 시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하필 SK온이 프리 IPO를 마무리한 직후 주주 반발이 예상되는 조달 선택지를 택한 배경을 두고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많다"라고 전했다. 

    시장에선 SK온이 프리IPO를 마무리하며 SK이노베이션도 급한 불을 끈 상황으로 보고 있었다. 지난 수년 동안 SK온이 SK이노베이션의 가장 큰 부담 요인이었던 탓이다. 물적분할 후 상장을 택하며 SK이노베이션 주가는 배터리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게 된 반면 재무부담은 누적되는 구조였다. 지난 8일 SK온이 전체 약 2조8000억원 규모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며 투자자 사이에선 드디어 SK이노베이션도 부담을 털고 주가가 배터리 가치를 반영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형성된 터였다. 

    SK이노베이션이 당장 유상증자에 나서야 할 만큼 자금 사정이 빡빡한 것도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말 별도 기준 약 3000억원 이상 현금을 보유 중이다. 주력인 정유 부문 업황이 불확실하나 올해도 조 단위 이상 실적이 예상된다. 윤활기유 부문에서만 올해 6000억원 안팎 배당 유입이 기대된다. 투자부담 대부분을 차지하는 SK온이 조달을 마친 상황에서 증자 없이도 현재 거론된 투자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 정유 담당 한 연구원은 "신사업 투자로 사용처를 못 박아둔 만큼 이번 유상증자 자체를 나쁘다 할 순 없지만, 당장 증자를 택해야 하느냐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다"라며 "신사업 투자를 늦출 수 없다는 설명도 일리는 있지만 시점에 차이가 있다 뿐 보기에 따라선 지난해 계획에 없던 SK온에 대한 2조원 규모 수혈분 일부를 뒤늦게 주주에게 걷어가는 모습으로 비친다"라고 설명했다. 

    SK㈜의 태도 변화 역시 이번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에 대한 시장 의문에 힘을 싣고 있다. 

    통상 재계에서 주주배정 유상증자는 모회사의 지원 부담을 의미한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와 같은 유망 신사업을 물적분할해 상장 트랙에 올린 것도 실제로는 그룹 정점에 위치한 지주사 부담을 우회하는 방안으로 통한 편이다. 모회사는 한발 물러서 있되 각 계열사 수장이 시장에서 자체 조달하라는 식이다. SK㈜를 정점으로 한 그룹 파이낸셜 스토리가 대표적으로 SK이노베이션과 SK온도 한 대목을 이루고 있다. 

    SK㈜가 보유 중인 SK이노베이션 지분율(34.91%)에 따르면 이번 증자에 4100억원 이상 참여해야 기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거꾸로 보자면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 결정에 SK㈜가 동의한 셈인데, 이례적이란 목소리가 많다. 수개월 전 그룹 내 핵심 전력인 SK하이닉스도 교환사채(EB)를 발행한 전적이 있는데다 SK온의 조달 불확실성이 걷히고 난 뒤 지원에 나서는 모양새인 까닭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그룹사도 마찬가지지만 SK그룹의 경우 원래 각 계열사가 알아서 승부를 보게 하는 편이다 보니 중간지주인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가 유독 눈에 띄는 편"이라며 "그러니 왜 지금 유상증자를 나서느냐는 물음이 한편으로는 SK㈜가 왜 지금 여기에 동의해 줬느냐로 통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만 아직까지 SK㈜는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 참여 규모를 확정하지 않았다. 통상 주주배정 유상증자의 경우 대주주의 참여 여부는 소액주주를 비롯한 시장 분위기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시장도 SK㈜의 증자 참여 여력과 의지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SK㈜가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면 유상증자를 둘러싼 우려를 일시 해소할 수 있을 거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SK이노베이션의 주주환원 목표 자사주 소각 계획과 관련해 대주주가 불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표하고 있다. SK㈜가 배정된 신주 발행분을 모두 포기할 경우 지배력은 32.07%로 하락한다. SK이노베이션이 자기주식(약 5.25%)을 소각하면 SK㈜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33% 이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SK㈜가 핵심 계열사에 대한 4000억원 규모 증자 부담을 이유로 시장의 빈축을 살 가능성은 낮다는 평이다. 증권사 인수영업 담당 한 관계자는 "SK㈜의 별도기준 보유 현금이 약 2500억원에 불과하긴 하지만 언제든 회사채 발행 등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SK 정도의 대형 그룹사에서 대주주가 유상증자에 불참하는 식의 리스크를 질 거라 보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의 참여 여부는 신주배정일까지 시일이 남은 만큼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라며 "유상증자 추진 시점과 관련해 시장의 아쉬움이 큰 상황이나 신사업 확대를 더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유 중인 자사주를 매각하지 않고 소각하는 등 방식으로 주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