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전산언어 'XBRL' 확대에 대기업 '긴장'…회계법인들은 영업 경쟁 '가열'
입력 23.06.29 07:00
2조 이상 상장사는 내년부터 주석까지 태그 달아 전산화
소송비ㆍ재고자산ㆍ토지 등으로 ‘기업 줄세우기’ 가능해
대기업, 경쟁사와 비교 걱정에 회계법인 자문료까지 부담↑
회계법인 경쟁 불 붙어…XBRL 조직 확대에 수임료 할인 등
  • 올해 3분기부터 확대 적용되는 재무제표 '국제표준전산언어'(XBRL) 제도를 두고 대기업들이 부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XBRL이 도입될 경우 기업들의 모든 재무 정보가 표준화ㆍ전산화돼, 회사가 감추고 싶은 주석(註釋)까지 쉽게 드러날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소송 비용이나 이자 비율 등 예민한 사안을 경쟁사와 비교당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주석을 전산화하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이다. 

    반면 회계법인들은 일감이 늘어나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4대 회계법인들은 각각 전담팀을 꾸리고 관련 조직을 확장하며 고객 모집에 나섰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임료 할인 경쟁도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금융 당국이 주도하는 'XBRL 재무공시 단계적 선진화 방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안에 따르면 국내 상장 회사들은 올해 3분기 실적 보고서부터 재무제표 본문에 XBRL을 의무 적용해야 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비금융 상장사 157곳은 내년 3월 발표하는 2023년도 사업보고서엔 주석까지 XBRL을 적용해야 한다. 단, 자산규모 50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들과 금융업 상장사의 경우 2024년 이후 적용 대상이다. 

    XBRL은 공시되는 정보에 태그(Tag)를 붙여 표준화 문서를 작성하는 제도다.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이 동일한 기준에 맞춰 공시정보라는 데이터를 정리하기 때문에 일괄 비교가 가능해진다. 

    현재는 각 기업들의 보고서를 내려 받은 후, 개별 값과 주석 내용을 일일이 검색해 확인해야 한다. 반면 XBRL이 주석까지 적용될 경우, 모든 기업들을 ▲재고자산 ▲소송 비용 ▲위험 자산 ▲비업무용 토지 등 태그값에 따라 1위부터 꼴등까지 자동으로 줄세울 수 있다. 원하는 기준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등수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그간 주석에 적혀 있는 기업의 이자 비율이나 투자 항목은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왔지만, 이를 경쟁사와 비교하다 보면 분명 눈에 띄는 점들이 보인다"며 "당국 입장에선 기업이 보다 투명하게 보여서 좋고, 회사 입장에선 이제부터 쉽게 비교당하게 생겼으니 두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선 방대한 양의 주석을 전산화하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이다. 사내에 XBRL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인력이 없기 때문에, 역량을 갖춘 대형 회계법인들과 XBRL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시 담당자 2인 이상에게 XBRL 실무 교육을 이수시켜야 하는 것도 예산을 증가시키고 있다. 

    한 대기업 회계 담당자는 "대기업들은 다 외주 형태로 자문 받고 있는데, XBRL은 유독 셋업(초기) 비용이 크게 든다"며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들은 2025년부터 ESG 공시도 의무라서 준비할 것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새 회계 제도를 기회 삼아 수익원을 늘리기 위해 관련 조직을 꾸리고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업을 방문해 자문료 할인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안진은 XBRL 전담 센터를 만들고 4대 회계법인 중 가장 많은 인력인 40여명을 투입했다. 투입 인원 대부분이 해외 상장사의 XBRL 공시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삼일은 올해 초 XBRL 전문인력을 추가로 확보하고, 디지털 전담팀을 꾸려 기업들을 방문하고 있다. 

    삼정은 30여명으로 구성된 관련 TF를 출범해 운영 중이며, 한영도 디지털 회계 관련 조직 안에 XBRL 관련 인력을 충원하고 XBRL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의 XBRL 담당자는 "기업들은 용역을 맡기는 입장이다 보니, 전문성 있는 곳보단 싼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최근 회계법인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며 "약 2~3년 후엔 미국처럼 XBRL로 기업 순위 리포트를 작성하고 판매하는 회사들도 생기는 등 부가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