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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CGV에 이어 SK이노베이션까지, 최근 대기업들의 잇따른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주식시장이 시끄럽다. 재벌그룹의 계열사가 특히나 일반 공모방식의 유증을 추진하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CJ CGV는 지주회사인 CJ㈜가 참여한다지만 규모가 600억원에 그치고 SK이노베이션의 경우엔 SK㈜가 어떤 결정을 할 지 주목된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연일 하락세다. CJ CGV는 6월초까지 1만5000원과 1만6000원 사이에 있던 주가가 9000원대로 떨어졌고,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20만원대에서 16만대로 떨어졌다.
조달자금은 대부분 또는 상당 부분이 차입금 상환에 쓰일 예정이다. 유증을 하면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다 조달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재무제표를 볼 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 돈으로 빚을 갚는다고 하면 주주들, 특히나 개미투자자 입장에선 속이 쓰릴 만 하다. 일각에선 이같은 유증이 경영진의 경영실패 책임을 주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기업들은 주주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런 논란이 일어날 것이란 것을 모를 리도 없다. 그만큼 지금은 기업들에 있어 주가 관리보다 유동성 확보와 신용등급 하락 방어 같은 재무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거다.
실제로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유상증자가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재무지표 및 신용도 부담에 대한 동사의 관리 노력을 보여준다고 판단한다"며 "레버리지 부담 완화에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3월, S&P는 SK이노베이션(BBB-)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했다. SK이노베이션의 공격적인 투자 계획에 따른 레버리지 부담(EBITDA 대비 차입금 비율 상승)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면서 "유상증자와 같은 비차입 자금조달 노력과 레버리지 수준 관리를 위한 재무정책을 중점적으로 살펴 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꾸 빚만 내면 신용등급에 문제가 생기고, 이게 다시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 보단 시장에서 욕을 먹더라도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라는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거다. 다시 말해 기업들 입장에선 지금 주주 눈치를 볼 여유도 없다.
그나마 해외를 기반으로 투자자들의 주목 받고 있는 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주주들을 설득할 명분이라도 있을테다. "조금만 참으면 회사가 더 성장할테고, 그 수혜는 '주주님들'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이다. 반면 내수 기반에 성장성이 제한적인 기업이라면 풀(Pool)도 크지 않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돈을 구하기 더 어려워진다.
개별 계열사의 위기를 그룹 전부가 떠안아줄 수 있는 여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번 유증을 두고 지주사들의 움직임도 그렇고, 최근 있었던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강등 역시 그룹 내 지원의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연초부터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나빠질 거라는 예측들은 있어왔다. 실제로 하반기를 앞두고 있는거 없는거 다 끌어모아 '곳간'을 채우려는 움직임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주주보다 채권자가 무서워지는 시점이 위기의 진짜 시작일지 모른다.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3년 06월 2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