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강한 주주'에겐 돈을 준다?…엘리엇 비난하다 '유대인 차별'에 발 빼던 삼성
입력 23.07.07 07:00
Invest Column
삼성, 2015년 합병 때 엘리엇 '대머리 독수리'로 비난하며 카툰 올리다 몰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반유대주의' 논란 일으켜…뒤늦게 삭제하고 진화
이후 이스라엘에 스타트업 사무소 개소ㆍ투자 지속…삼성, "대가성은 없다"
강한 엘리엇엔 비공개 합의금…수박 돌리며 설득하던 소액주주엔 여전히 '침묵'
  • 엘리엇의 위세를 과소평가했던 삼성의 초기 대응은 상당히 미흡했다. 엘리엇의 공세가 격화하며 합병 과정에서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고 삼성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수비에 나섰다. 정보력이 여느 국가기관에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던 삼성그룹은 허점을 여실히 노출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추진할 당시 가장 화제가 된 모습 중 하나는 '수박을 든 삼성물산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은 전체 주식의 약 25%, 수 천명에 달하는 개인주주들을 수박을 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위임장을 수집 했는데 이 과정에선 개인정보 유출 및 편법 수집 논란이 일었다. 합병 이후 회사는 위임장 수집에 직접 나선 건설부문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소위 '팽(烹)했다'는 논란이 회자되기도 했다.

    사실 그 당시 삼성물산이 엘리엇을 얼마나 큰 위협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나타내는 사례는 따로 있다.

    삼성물산은 주총을 일주일여 앞두고 종합지와 경제지 1면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게재했고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 줄 것을 읍소했다. 삼성그룹의 1면 광고, 그것도 주총 안건 통과를 위해 반대주주를 언급한 사례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안타깝게도 엘리엇은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미래가 방해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 여기까지만 해도 삼성물산 절박함의 발현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민감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사가 임직원을 동원해 창과 방패의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다소 흔한 일이다. 대국민기업의 경영권을 넘보는 엘리엇을 악덕 자본의 프레임을 씌워 몰아내겠단 삼성의 영리한 의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삼성물산은 이 정도의 노력도 불안했는지 그즈음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고 만다.

    주총을 한달여 앞두고 엘리엇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점, 삼성물산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헤지펀드 엘리엇’을 자세히 소개했다. 카툰(Cartoon) 형식으로 소개한 엘리엇은 불법 행위를 반복하는 악덕 자본으로 묘사됐는데, 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의 채권을 저가에 사서 해당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익을 얻은 콩고의 투자 사례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 압권은 단연 대머리 독수리로 묘사된 엘리엇의 모습이었다. 헤지펀드 가운데 일부는 간혹 대머리독수리를 일컫는 벌쳐(Vulture)펀드로 언급되기도 한다. 벌쳐 펀드는 자금난에 처한 기업 또는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구조조정 등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펀드란 설명 보단, '어떤 전략을 사용해서든 돈을 번다'는 다소 악의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삼성물산이 엘리엇을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대머리 독수리로 형상화해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해당 카툰이 연재되면서 국내 몇몇 언론사들은 이를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란 의미로 해석했다. 사실 엘리엇의 창업자 폴 엘리엇 싱어(Paul Elliott Singer)는 미국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막강한 유대인 인맥을 통해 성장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국내 일부 언론은 폴 싱어를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 속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에 비유했고, 엘리엇에 대머리 독수리 그리고 악덕 사채업자의 프레임이 씌워지며 논란이 확산했다.

  • '유대인 차별 논란' 자체는 삼성의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삼성이 엘리엇을 악덕자본으로 규정하면서 유대인들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발단이 됐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글로벌 금융시장과 미국 주류 정치권에서 '유대인 파워'는 막강한 수준을 넘어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월스리트저널(Wallstreet Journal)이 한국에서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 편견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썼다. 미국 내 유대인 단체는 공식적으로 삼성물산에 항의했고, 유대인 출신 국회의원들까지 힘을 실었다.

    인종차별 논란이 확산하고 자칫 한ㆍ미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자 그제서야 삼성물산은 황급히 해당 카툰을 삭제했다. 이어 한광섭 커뮤니케이션 총괄(전무) 명의로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를 규탄한다("We categorically denounce anti-Semitism in all its forms, and we are committed to respect for all individuals)"고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외 언론사의 해당 기사 및 칼럼은 모두 비공개로 전환하며 사태가 일단락 됐다.

    당시엔 삼성이 사태 진화를 위해 이스라엘에 상당한 대가성 투자를 진행했을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사실 공식적인 투자 발표는 없었는데, 삼성전자, 삼성물산의 기업 규모를 비쳐볼 때 어떤 형태의 투자든 공시 의무를 질 수준의 규모는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삼성물산 합병 직후인 2016년, 삼성전자의 해외 투자 전초기지인 삼성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 삼성넥스트(Samsung NEXT) 사무소를 개소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삼성넥스트를 비롯해 이스라엘 현지 법인에 대한 삼성그룹의 투자는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물산 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대가성 투자는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인종차별 논쟁의 중심에 서며 대내외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이를 통해 수천억원 이상의 유무형의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해당 사건을 통해 엘리엇은 건재한 네트워크를 대내외적으로 확인시켰고 이스라엘 정부 또한 삼성그룹의 투자가 지속하는 효과를 보게 됐다.

    막강한 유대인 네트워크가 아니더라도 엘리엇이란 다소 버거운 상대에 대한 삼성그룹의 저(低) 자세는 최근 드러난 '비밀 합의'에서도 옅볼 수 있었다. 최근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출된 엘리엇과 정부 양측의 서면을 통해 원천징수세와 세금을 공제한 약 660억원을 삼성으로부터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약하면 삼성물산이 합병 과정에서 엘리엇이 보유한 주식을 6만6000원에 매수하게 된 반면, 일반주주들의 주식은 기존에 정한 5만7000원에 사준 것이 확정된 판결이다.

    사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란 결론은 이재용 회장, 엘리엇, 국민연금과 일성신약, 개인주주들 모두에게 동일하다. 합병에 찬성한 주주든, 엘리엇과 같이 극렬히 반대한 주주든 합병을 통한 이익과 손해, 그리고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손실의 규모가 같을 수밖에 없단 의미다. 엘리엇이 일반 주주들에 비해 더 받은 주당 9000원의 가격의 차이는 660억원, 모든 주주들에게 엘리엇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댔다면 삼성그룹의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물론 어디까지나 엘리엇과 같이 주식매수청구에 대한 중재를 신청하고, 국제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 삼성그룹 측은 주식매수 전과 후 그리고 현재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엘리엇과의 중재재판에서 '93%의 승리'라는 논리로 스스로 위안했지만, 사실 우리 정부가 고작 7%의 패소만으로 너무나도 큰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정부의 패소가 확정하면 삼성그룹에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또 다시 엘리엇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해야한다. 유무형의 손실은 모두 주주들의 몫이다.

    최근 엘리엇과의 분쟁에서 삼성그룹이 보여준 사례는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모습"의 전형이다. 

    수박 한덩이에 찬성표를 던진 주주들은, 소송의 명분도 마땅치 않고 소송에 들어간 비용과 시간을 따진다면 불확실한 결론에 베팅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이 같은 사실을 너무 알고 있을 삼성은 침묵할 것이다. 엘리엇이 그랬던 것처럼 또 어떤 주주가, 어떤 단체가, 어떤 힘 있는 집단이 삼성을 흔들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