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성장세 가파른 사모대출펀드(PDF), 국내선 자리잡을 수 있을까
입력 23.07.11 07:00
은행 대출 기준 요건 강화에 PDF 주목↑
美크레딧 시장은 은행 대출 비중 20%
국내선 업력 짧고 은행·증권사 영향력 커
기보·신보 등 정책금융기관 특수성도
  • 글로벌 사모대출펀드(PDF·Private Debt Fund)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각국의 시중은행들이 대출 기준 요건을 높이면서다. 국내에서도 운용사들의 PDF 조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글로벌 운용사들의 국내 시장 진출이 잇따르며 PDF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시장 성장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최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전통적인 은행권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은 기업들의 자금을 조달해주는 사모대출 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11년 4000억달러였던 글로벌 PDF 운용자산은 2021년 3배 이상 성장한 1조2810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7년 2조3000억달러까지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사모대출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전세계적인 고금리 시장 환경과 은행의 대출 규제 강화, '중위험·중수익'을 원하는 기관투자가의 수요,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등이 맞물렸단 분석이다. 

    국내 공제회 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주식 시장이 되살아났다고는 하지만 변동성 및 리스크는 여전히 큰 상황이다보니 확실하게 베팅할 수 있는 건 '고금리'"라며 "상대적으로 은행 예금이나 회사채의 금리가 내려간 상황에서 은행 대출 기준까지 강화되면서 사모신용 시장에 있는 금리형 상품의 매력도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운용사들이 국내에 법인을 설립해 사모대출 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에서도 PDF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아폴로'가 뉴욕의 대체투자 운용사인 'EMP벨스타'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해 국내 PDF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국내 운용사들도 PDF 펀드레이징에 속속 나서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IMM크레딧앤솔루션은 지난해부터 3000억원을 목표로 PDF 펀드레이징에 나서고 있고, 글랜우드크레딧 역시 올 들어 수천억원 규모의 PDF 조성에 나섰다.

    다만 해외와 달리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 증권사 등 1·2금융권의 영향력이 막대한 국내에서 사모대출 시장이 확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 크레딧 시장에서는 이미 은행 대출 비중이 20% 정도에 불과하며, 기업들이 사모신용펀드(PCF) 운용사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생소하지 않다. 이에 국내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LP)들도 해외 운용사의 PDF에 출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민연금 한 관계자는 "해외 다양한 운용사들과 사모대출 투자를 하고 있다"며 "국내는 사모대출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는 관련 업력이 10년이 넘을 정도로 사모대출 시장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다른 공제회 한 운용역 또한 "대체투자에서 사모대출을 주목하고 있지만, 국내보다는 북미나 유럽 운용사들이 주로 좋은 투자 건들을 갖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국내 PDF의 본격적인 역사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만 가능했던 대출형 펀드 조성이 일반·기관전용 운용사들까지 확장됐다.

    부분적인 자산운용 전략만 가능했던 운용 규제에서 메자닌 투자, 금전차입, 대출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됐지만, 국내에선 아직 대형 운용사들만 관계사를 설립해 PCF를 운용하고 있다. IMM PE의 IMM크레딧앤솔루션(ICS), VIG파트너스의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 글랜우드PE의 글랜우드크레딧 등이 대표적이다.

    이마저도 국내에선 아직 소수지분 투자, 부동산 담보 대출 등으로 범위가 좁다는 평가다. 특히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접대출(Direct Lending) 등은 국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크레딧 펀드 운용사들 중 직접대출을 통한 기업 대출 케이스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트랙 레코드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아직까진 메자닌 성격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 CB(전환사채), RCPS(상환전환우선주)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이 존재하는 특수성도 기업의 대출 유인을 줄여 국내 PDF의 영역 확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자본시장 관계자는 "국내 운용사들이 조성한 사모대출펀드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일반 은행 대출을 대체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은 신보나 기보 등 기관이 보증해주는 보증부 대출이 많다 보니 은행이 기업보단 기관을 믿고 대출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보증부 대출이 있는데도 PDF 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면 기업의 평판 리스크도 있을 수 있다"며 "국내 PDF 시장은 대주주가 급전이 필요할 때나 은행 여신 한도가 찼을 때 등 특수상황 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미국 등 해외 금융기관은 은행이 대출 요건을 강화하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지만, 국내에선 기관이 상대적으로 저신용 기업들의 대출도 보증해주다 보니 기업들이 PDF 시장을 찾을 유인이 제한적일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국내 PDF가 해외에 비해 아직 성장 초기단계인 만큼 유동성 리스크 등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철저한 금융당국의 관리 하에 있는 제도권 금융회사들과 달리 사모대출 시장은 아직 당국이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칫 문제가 터지면 크게 터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