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수 무관' 도마 오를 은행권 금융사고…내부통제 대규모 투자 불가피
입력 23.07.14 07:00
은행권 횡령 재차 '9건' 적발…자구노력에도 회의적 반응
작년 불거진 은행권 대규모 횡령 영향…액수와 '무관' 평
금융당국·은행권 조치 이어지지만…긴장 놓기 어려울 듯
"원래 불완전한 영역이지만"…스스로 허들 높였단 평도
  • 횡령 등 은행의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금융사고가 계속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연말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며 금융회사 차원의 자구노력도 이어졌지만 올 상반기에도 여전히 실패 사례가 드러난 탓이다. 

    지난해 우리은행의 700억원 규모 횡령 이후 당국이 칼자루를 쥔 가운데, 은행권의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가 내부통제에 대한 '눈높이'를 올려버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부통제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업권 부실 우려가 높아진 터에 하반기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금융권 전반에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은행에서만 총 9건, 약 16억1000만원 규모 횡령 사고가 확인됐다. 지난 5년 동안의 추이에 비춰 절대적인 액수 자체는 크지 않으나 올 들어 은행권 전반이 보여 온 내부통제 강화 의지에 회의적 분위기가 짙다.

  • 금융권에선 지난해 은행권에서 확인된 대규모 횡령 사고가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상반기 적발된 은행권 횡령액 자체는 그간 추세를 벗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올해를 제외하고 보면 2018년 이후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사고 피해액은 작년까지 10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규모나 빈도 측면에서 은행권 내 횡령 사고 비중이 가장 높기도 하지만, 특히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약 700억원 상당의 횡령 사고가 '드라마틱'한 통계치를 만들어냈다는 평이 많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사실상 은행권에서 금융당국의 내부통제나 지배구조 개선 등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기에 맞춤한 그래프를 만들어준 것"이라며 "금융당국에서 지난해 발표한 내부통제 혁신방안에 이어 최근 책임지도 제도 도입까지 공식화했지만 액수를 떠나 횡령 사건은 계속 적발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이나 은행의 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 책무구조도 도입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은행은 준법감시 인력을 전체 임직원의 0.8%까지 의무적으로 확대하고 이 중 20%는 전문 인력으로 구성해야 한다. 혁신안에는 동일부서 장기근무자는 순환근무 대상의 5% 이내로 축소하는 동시에 명령휴가제나 직무분리 제도 등 대상자를 확대하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각 은행지주도 올 들어 관련 인력과 인프라 구축에 비용을 쏟는 한편 책무구조도 마련 준비 등 자구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연말 내부통제 강화 목적으로 준법경영부를 신설해 각 지역본부마다 내부통제 팀장을 배치하는 등 관련 인력을 대폭 늘렸다. 지난 5월 장기근무 유임 신청 직원을 대상으로 금융거래 내역 등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 제출 서류 등 매뉴얼을 마련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3월 이사회 결의로 내부통제 규정을 개정한 데 이어 내부통제 컨트롤타워 격인 검사본부를 신설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지난해 나온 혁신안에 따라 각 은행마다 금융사고 고위험 업무를 선별해 명령휴가제나 직무분리, 순환근무 확대도 이뤄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현금 검사를 강화하는 한편 사고개연성이 높은 영업점 업무에 대해선 상시감사 제도를 운용하고 하나은행은 자금집행 부서 등에 대해선 필수 명령휴가 대상자를 선정해 불시 명령휴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각 은행장(CEO)은 반년 이내에 책무구조도를 직접 작성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사실상 금융당국 요구대로 사전 예방부터 사후 대책까지 은행권 전반에서 가용한 대책 마련에 최대한 대응하고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로도 은행권을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이 긴장을 늦추긴 어려울 전망이다. 횡령과 같은 내부통제 실패가 원래 사후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인 데다 현 상황이 본질적으론 은행권 신뢰 회복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이제는 은행이나 지주 모두 돈과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금융사고가 아예 발생하지 않더라도 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고가 터질 때마다 회의적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연말 전후로 주요 은행지주의 리더십 교체 및 조직개편 과정에서 은행권 스스로 내부통제에 대한 시중 눈높이를 높이며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뢰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지만 사소한 사고에도 세간 잣대가 더 엄격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단 얘기다. 

    자문업계에선 금융회사 내부통제 업무가 법과 규정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원래 불완전성을 띤다고 설명한다. 필요에 따라 새로운 규정이나 절차 등이 도입되면 업무 중복이나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준법감시 업무나 내부회계관리, 운영리스크 관리 업무 등은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나 바젤 II 규제 등이 적용되면서 추가된 내부통제 업무로 통한다. 사전 예방에 노력을 쏟는 것 외엔 사고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해 사고 이후 강화된 강제 순환 근무제와 명령 휴가제 등은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제라는 평이 많다. 실제 효과도 미지수다. 그나마 이상 거래 상시 감시 대상에 본부 부서를 포함한 게 올 상반기 횡령 사고 사전 포착에 도움이 됐다는 평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규제 강화의 불씨가 된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집중포화를 당했음에도 또 다시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직원 윤리 재교육이 제대로 시행됐는지 의문을 갖는 시각이 있다"며 "컴플라이언스 인력 및 탐지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야 할텐데, 경영진이 얼마나 복안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변수"라고 말했다.